도올 김용옥의 ‘점칠 정(貞)’ 해석, 주역 원문을 되살린 고증인가 과격한 직역인가

Photo of author

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동양철학의 최고 고전으로 꼽히는 《주역(周易)》을 둘러싼 해석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건괘(乾卦)의 핵심어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의 마지막 글자, ‘정(貞)’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단순한 번역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주역》을 원시 고대의 점서(占書, 점을 치기 위해 쓰인 책)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공자 이후 유교가 완성한 철학 경전으로 볼 것인가를 가르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도올주역강해》를 비롯한 여러 강의와 저술에서 貞을 전통적인 ‘곧을 정’이 아니라 ‘점칠 정’으로 해석해 왔다. 이 해석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공자 이후 2천 년 넘게 ‘바름’, ‘곧음’, ‘정절’, ‘올바름’으로 읽혀온 글자를 다시 ‘점치다’로 되돌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해석은 도올 개인의 기발한 발상이 아니라, 20세기 이후 갑골문(甲骨文, 거북껍질이나 짐승 뼈에 새긴 중국 고대 문자), 금문(金文, 청동기 명문), 출토문헌 연구, 중국 고경학(古經學, 고대 경전을 원래 역사적 맥락에서 읽으려는 학문)의 성과 위에 놓여 있다.

 

동시에 이 해석에는 예리한 의문도 따라붙는다. 《주역》 자체가 이미 점을 친 결과인 점사(占辭, 점괘에 붙은 말)를 모아 놓은 책인데, 그 안에서 다시 “점을 치라”고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하는 문제다. 다시 말해 “이미 점을 쳤는데 또 점을 치라고?”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상식적 반문이 아니라, 주역 문헌학과 번역학의 핵심을 건드리는 문제다.

 

 [코리안투데이] 갑골문과 주역 괘사를 함께 배치한 고대 문자 연구 이미지. 貞은 후대 유교에서 ‘바름’으로 읽혔지만, 갑골문 자료는 이 글자가 본래 신에게 묻는 점복의 언어였음을 보여준다.(이미지 제공: AI 생성이미지) ⓒ 박찬두 기자 

 

‘원형이정(元亨利貞)’은 《주역》 건괘 첫머리에 나오는 네 글자다. 전통 유교 해석에서는 이를 “크게 형통하고 바르고 곧음이 이롭다”로 읽었다. 여기서 元은 ‘크다’ 또는 ‘시작’, 亨은 ‘형통하다’, 利는 ‘이롭다’, 貞은 ‘바르다’로 풀이된다. 공자 이후의 《역전(易傳)》, 특히 《문언전(文言傳)》은 이 네 글자를 하늘의 네 가지 덕, 곧 사덕(四德)으로 해석했다. 송대 성리학에 이르면 元亨利貞은 춘하추동, 인의예지와 연결되며 우주 질서와 인간 윤리를 동시에 설명하는 철학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도올 김용옥 교수와 현대 고증학 계열 주역 연구자들은 이 전통적 해석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주역》의 괘사와 효사(爻辭, 각 효에 붙은 점사)가 성립한 시대를 서주 초기, 대략 기원전 11세기에서 기원전 10세기경으로 본다. 이 시기의 문자는 아직 후대 유교처럼 고도로 추상화된 도덕 개념을 안정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제사, 사냥, 전쟁, 출산, 질병, 날씨, 왕권, 점복 같은 구체적 행위와 사건을 기록하는 데 주로 쓰였다.

 

갑골문 자료에서 貞은 매우 자주 등장한다. 은나라 왕이 조상신이나 하늘에 어떤 일을 물을 때, 갑골문 기록은 대체로 날짜, 점친 사람, 貞, 질문 내용의 형식을 취한다. 여기서 貞은 “점을 쳐서 묻는다”는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貞은 원래 ‘도덕적으로 곧다’가 아니라 ‘신에게 묻다’, ‘점쳐 묻다’, ‘복문(卜問, 점을 쳐서 질문함)’의 성격을 가진 글자였다. 고문자학자들이 貞의 자형을 ‘卜’과 ‘貝’ 또는 ‘鼎’의 결합으로 설명하는 것도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 卜은 거북껍질이 갈라지는 점복의 형상이고, 貝나 鼎은 제물·기물·제사 행위와 관련된 상징으로 해석되어 왔다.

 

도올의 해석은 바로 이 지점에 뿌리를 둔다. 그는 유교가 덧씌운 도덕적 해석을 걷어내고, 《주역》을 원래의 점서적 성격으로 되돌려 읽으려 한다. 이 관점에서 元亨利貞은 “크게 형통하니 바름이 이롭다”라기보다 “크게 제사를 올려 통하였고, 점쳐 묻는 일에 이롭다” 또는 “크게 형통하니 이 점의 정함을 고수하는 것이 이롭다”에 가까워진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코리안투데이] 도올의 고증학적 해석과 전통 유교 해석을 비교한 개념도. 논쟁의 핵심은 貞을 ‘점쳐 묻다’로 볼 것인가, 공자 이후 형성된 ‘곧고 바름’의 철학 개념으로 볼 것인가에 있다.(이미지 제공: AI 생성이미지) ⓒ 박찬두 기자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날카롭다. 《주역》은 점을 친 뒤 얻은 괘와 그에 딸린 점사를 읽는 책이다. 그렇다면 점사의 내용 속에 또다시 “점을 치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특히 ‘利貞’을 “점을 치는 것이 이롭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 이를 “이번에 점을 친 행위가 이롭다” 또는 “이 사안에 대해 점쳐 묻는 것이 유리하다”로 보면 문맥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貞 한 글자가 단독으로 나오는 경우에도 모두 “점치다”라는 동사로 해석하면 문제가 생긴다. 점을 쳤는데 다시 점을 치라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이 의문은 도올 해석을 무너뜨리는 단순한 반론이 아니다. 오히려 도올이 환기한 고증학적 문제의식을 한 단계 더 정교하게 다듬도록 요구하는 질문이다. 貞의 본뜻이 ‘점쳐 묻다’라는 사실과, 《주역》 문장 속 모든 貞을 기계적으로 ‘점치다’라는 동사로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원이 곧바로 모든 문맥의 번역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현대 학계의 더 세련된 대안은 貞을 단순한 동사 ‘점치다’로만 보지 않고, ‘점쳐진 안건’, ‘점의 대상’, ‘점으로 확정된 상태’, ‘신의 뜻으로 정해진 바’로 읽는 방식이다. 이 경우 “貞, 吉”은 “점을 치면 길하다”가 아니라 “이번에 물어본 그 안건은 길하다” 또는 “이번 점으로 확정된 상태를 지키면 길하다”로 해석된다. 이 해석은 점사 안에서 다시 점치라는 중복 명령의 어색함을 피하면서도, 貞의 원래 점복적 성격을 보존한다.

 

《서경(書經)》 홍범(洪範) 편은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이다. 홍범은 고대 정치와 우주 질서, 통치 원리를 다루는 유명한 편인데, 그중 ‘계의(稽疑, 의심나는 일을 점쳐 살핌)’ 항목에서 거북점과 시초점(筮, 산가지로 치는 점)의 원리가 설명된다. 여기에 “筮曰貞, 曰悔”라는 식의 표현이 등장한다. 여기서 貞은 단순히 ‘바르다’가 아니라 점의 구조 안에서 쓰이는 전문 용어로 이해된다. 후대 역학에서는 貞과 悔를 각각 내괘와 외괘, 또는 점을 친 당사자 쪽과 상대 쪽의 상황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도 실제로 《주역》을 사용해 점을 치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 사례들은 《주역》이 춘추시대까지도 철학 경전이기 전에 실제 점복 행위의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전쟁, 혼인, 외교, 정치적 결단 앞에서 괘를 얻고 그 괘사와 효사를 해석하는 방식은 貞을 점술적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다만 이 경우에도 貞을 매번 “또 점을 치라”는 뜻으로만 이해하기보다는, “이번 점의 판단”, “점쳐진 입장”, “확정된 방향”으로 읽을 여지가 크다.

 

 [코리안투데이] 고대 중국 점복 장면을 재현한 이미지. 주역은 처음부터 추상적 철학서가 아니라 전쟁, 제사, 도읍, 혼인 같은 중대사를 앞두고 신의 뜻을 묻던 점복 문화에서 출발했다.(이미지 제공: AI 생성이미지) ⓒ 박찬두 기자

 

그렇다면 《시경(詩經)》이나 《서경》 같은 당대 또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문헌에서 貞은 어떻게 쓰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두 의미가 모두 나타난다. 이른 시기에는 점복과 관련된 의미가 강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굳다’, ‘정해지다’, ‘지키다’, ‘곧다’, ‘바르다’라는 의미가 점차 확대된다. 즉 貞은 어느 날 갑자기 ‘점치다’에서 ‘바르다’로 바뀐 것이 아니라, 점쳐서 정해진 신의 뜻을 흔들림 없이 지킨다는 관념을 거쳐 도덕적 올바름의 뜻으로 발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경》의 오래된 편들, 특히 대아(大雅)나 주송(周頌) 계열에는 제사, 왕권, 천명, 점복의 흔적이 짙다. 이런 대목에서 貞은 점복 행위와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서주 후기나 춘추시대에 가까운 시들에서는 貞이 절개, 굳셈, 한결같음, 바름의 의미로 읽히는 경우가 나타난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역 괘사 성립 당시의 貞을 무조건 후대의 도덕 개념으로 읽는 것도 위험하지만, 반대로 모든 貞을 오직 ‘점치다’라는 동사로만 고정하는 것도 고대 언어의 의미 확장을 과소평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자 시대에 이르면 貞의 의미는 더욱 철학화된다. 《논어》에서 공자는 貞을 적극적으로 점치다의 뜻으로 쓰지 않는다. 공자의 언어 세계에서 핵심은 정(正), 의(義), 인(仁), 예(禮) 같은 윤리적 개념이다. 공자가 직접 《십익(十翼, 주역을 해설한 열 편의 전傳)을 모두 지었는지는 현대 학계에서 논쟁이 있지만, 적어도 공자학파와 전국시대 유가적 주역 해석은 貞을 ‘바름’과 ‘굳셈’의 방향으로 재해석했다. 《문언전》에서 “貞者, 事之幹也(정자, 사지간야: 바르고 굳건함은 일을 이루누는 중심 뼈대이다.)” 또는 “貞固足以幹事(정고족이간사: 바름을 굳게 지키면 일을 담당하고 이끌어 갈 수 있다.)”로 貞을 풀이하는 전통은 바로 이 철학적 전환을 보여준다. 여기서 貞은 더 이상 단순한 점복 행위가 아니라, 일을 지탱하는 근본적 바름과 굳셈이 된다.

 

따라서 貞의 의미 변천은 크게 세 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은·서주 초기의 貞은 점쳐 묻는 행위 또는 점복의 안건에 가깝다. 둘째, 서주 후기에서 춘추시대에 이르면 점쳐 정해진 바를 고수한다는 뜻에서 굳셈과 한결같음의 의미가 생겨난다. 셋째, 공자 이후 유가적 해석에서는 貞이 인간의 도덕적 올바름, 절개, 정당성, 지조를 뜻하는 철학 개념으로 굳어진다. 이 과정은 문자 의미의 퇴화가 아니라 역사적 축적이다.

 

도올 김용옥 교수가 貞을 ‘점칠 정’으로 읽은 배경에는 구체적인 학문적 계보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고힐강(顧頡剛)이다. 고힐강은 중국 근대 사학의 ‘의고파(疑古派, 고대 전승을 비판적으로 의심하고 검증한 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다. 그는 고대 중국의 신화와 경전 전승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역사적 층위를 분석해 해체했다. 《주역》 역시 공자 이전의 원시 점서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 문헌으로 보았다. 도올의 주역 독법은 이런 고힐강식 문제의식과 깊이 연결된다.

 

곽말약(郭沫若) 역시 중요한 이름이다. 곽말약은 갑골문과 금문 연구를 통해 고대 문자와 사회 구조를 해명한 대표적 학자다. 그는 은허 갑골문에서 貞이 점복 기록의 핵심 용어로 쓰였다는 사실을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왕국유(王國維)의 갑골문·금문 연구, 그리고 이후 중국 고문자학의 성과도 도올 해석의 배경을 이룬다. 이 흐름에서는 《주역》을 공자의 철학으로만 읽지 않고, 은주 교체기와 서주 초기의 정치·제사·점복 문화 속에서 읽어야 한다고 본다.

 

이경지(李鏡池)의 《주역탐원(周易探源)》도 빼놓을 수 없다. 이경지는 《주역》 괘사와 효사를 고대 점서의 언어로 분석하며, 元亨利貞을 후대 사덕론이 아니라 점복 문장의 공식적 표현으로 해석했다. 도올의 해석은 이런 중국 현대 고경학의 성과를 한국어 대중 담론으로 강력하게 번역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도올의 ‘점칠 정’은 독단이 아니다. 분명한 학술적 배경이 있다.

 

 [코리안투데이] 현대 고경학 계보를 시각화한 그래프. 도올의 ‘점칠 정’ 해석은 개인적 직감이 아니라 고힐강, 곽말약, 이경지 등 갑골문·출토문헌 연구 성과와 맞닿아 있다.(이미지 제공: AI 생성이미지) ⓒ 박찬두 기자

 

그러나 도올 해석의 공로와 한계는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도올의 가장 큰 공로는 유교적 권위에 갇혀 있던 《주역》을 역사적 원문으로 다시 읽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주역》이 처음부터 고상한 도덕철학 책이었다는 통념을 깨고, 그것이 원래 제사와 전쟁과 정치적 결단 앞에서 사용된 고대 점서였음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는 학문적으로도 의미 있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모든 貞을 처음부터 끝까지 ‘점치다’라는 동사로만 밀어붙이는 번역은 문맥상 과격할 수 있다. 특히 점사 안에서 다시 점치라는 식의 구조가 반복되면 독자는 자연스럽게 논리적 불편함을 느낀다. 이 불편함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를 정확히 읽으려는 감각에서 나온다. 도올의 해석이 고증학적으로 출발했더라도, 번역은 문장 안에서 살아 움직여야 한다. 한 글자의 어원이 문장 전체의 의미를 강제로 지배해서는 안 된다.

 

이 지점에서 국내 주역학계의 비판도 주목할 만하다. 도올의 대중적 영향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일반 언론에서는 그의 주역 해설을 주로 출간 소식이나 강연 화제로 다루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전통 한학, 역학, 동양철학, 출토문헌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도올식 직역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꾸준히 존재했다. 핵심은 “어원은 맞지만 번역은 거칠다”는 것이다. 貞의 고대적 뿌리가 점복에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그것을 모든 문맥에서 동사 ‘점치다’로 처리하면 《주역》 문장의 다의성과 점술 용어의 실제 기능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통 의리역(義理易, 주역을 도덕철학과 의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학풍) 계열에서는 더 강하게 반발한다. 이들은 공자 이후의 철학적 해석 역시 《주역》 해석사의 정당한 일부라고 본다. 주역이 점서에서 출발했다 해도, 2천 년 넘는 세월 동안 인간 수양과 정치철학, 우주론의 경전으로 읽혀온 전통을 단순히 왜곡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점칠 정’이 원형이라면, ‘곧을 정’은 역사 속에서 축적된 의미라는 것이다.

 

반대로 출토문헌과 고문자학에 가까운 연구자들은 도올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하면서도, 貞을 더 정교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들은 貞을 “점치다”라는 행위 동사로만 보지 않고, “점쳐진 바”, “정해진 상태”, “질문으로 올려진 안건”, “신의 응답에 의해 확정된 방향”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보면 ‘利貞’은 “점을 치는 것이 이롭다”라기보다 “이번 점으로 확정된 방향을 지키는 것이 이롭다” 또는 “이 안건에 대한 점복 판단은 이롭다”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방식은 고증학과 문맥성을 동시에 살린다.

 

 [코리안투데이] 貞의 의미 변천을 정리한 타임라인 그래프. 貞은 ‘점쳐 묻다’에서 ‘정해진 바를 지키다’로, 다시 공자 이후 ‘바르고 곧다’는 윤리 개념으로 확장되었다.(이미지 제공: AI 생성이미지) ⓒ 박찬두 기자

 

이 논쟁은 단순히 도올을 옹호하느냐 비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다. 고전은 한 시대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여러 시대의 해석이 겹겹이 쌓인 텍스트다. 《주역》의 貞도 마찬가지다. 은나라와 서주 초기의 점복 기록 속에서는 ‘점쳐 묻다’였고, 서주 후기와 춘추시대에는 ‘정해진 바를 지키다’로 확장되었으며, 공자 이후에는 ‘바르고 곧다’는 윤리적 의미로 승화되었다. 세 의미 중 하나만 진짜이고 나머지는 가짜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어느 시대의 《주역》을 읽고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도올은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원시적 《주역》을 읽자고 말한다. 그의 독법은 충격적이고 생산적이다. 그러나 그 충격이 언제나 가장 정확한 번역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전통 유교 해석은 수천 년 동안 《주역》을 인간의 삶과 도덕의 경전으로 다듬어 왔다. 그러나 그 전통이 원래의 점서적 성격을 완전히 지워버린다면, 그것 역시 역사적 원문을 가리는 장막이 된다.

 

결국 貞을 둘러싼 논쟁은 두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요구한다. 하나는 원래 글자의 고고학적 뿌리를 무시하고 무조건 ‘바르다’로 읽는 태도다. 다른 하나는 글자의 어원에 지나치게 매달려 모든 문맥을 ‘점치다’로 환원하는 태도다. 더 설득력 있는 길은 貞의 의미를 시대와 문맥에 따라 층위 있게 읽는 것이다. 주역 괘사 성립 당시에는 점복 용어였고, 문장에 따라서는 ‘점쳐진 안건’이나 ‘확정된 상태’로 읽어야 하며, 후대 유교 해석에서는 ‘바름’과 ‘굳셈’이라는 철학적 의미가 정당하게 형성되었다고 보는 방식이다.

 

도올 김용옥의 해석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읽어온 고전은 정말 원래의 고전인가, 아니면 후대 해석이 덧씌운 고전인가.” 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그 질문에 답할 때에는 원형을 향한 열정만큼이나 문맥을 읽는 섬세함도 필요하다. 貞은 단순히 ‘점칠 정’이거나 ‘곧을 정’이 아니다. 그것은 점복에서 윤리로, 신의 응답에서 인간의 결단으로, 고대 제사장의 언어에서 철학자의 언어로 이동한 한 글자의 긴 역사다.

 

 [코리안투데이] 주역의 역사적 층위를 표현한 이미지. 주역은 고대 점복의 기록에서 출발했지만, 공자 이후 인간의 도덕과 우주 질서를 사유하는 철학 경전으로 확장되었다.(이미지 제공: AI 생성이미지) ⓒ 박찬두 기자

  

이제 《주역》을 읽는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권위에 기대는 태도가 아니다. 도올의 고증학적 도발을 통해 원문을 다시 보고, 전통 유교의 철학적 성취를 통해 의미의 깊이를 함께 읽어야 한다. ‘점칠 정’은 《주역》의 원시적 생명력을 되살리고, ‘곧을 정’은 그 생명력이 인간 윤리로 성숙한 결과를 보여준다. 두 해석은 충돌하면서도 서로를 보완한다. 그 긴장 속에서 《주역》은 여전히 살아 있는 고전으로 남는다.

                                                                                     [코리안투데이=박찬두 학술전문 기자]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WIA Code — 이 기사 링크
인쇄용 ·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확인
기사 바로 열기 ·
⇓ PNG 다운로드

댓글 남기기

WIA Family · 88개 언어 무료 학습 게임 — WIAver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