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25] 열 장의 유서
5월 · 세 번째 문 | 약 3분 읽기삼국지 365 · Day 125 · Book 1 「별이 모이다」

일곱 번째 쪽지까지가 예측이었다. 여덟 번째부터는 결의였다.
건안 11년(서기 206년) 늦겨울, 조조(曹操)의 행렬은 업성(鄴城) 함락 이듬해의 마지막 북상길을 지나고 있었다. 곽가(郭嘉)의 오른쪽 장갑이 이미 열 달째 벗겨지지 않고 있었다. 장갑 안쪽의 손가락은 눈에 보이지 않게 더 가늘어졌다. 다만 왼손만이, 이른 아침마다 먹을 갈았다.
일곱 번째 쪽지의 제목은 "남정부삼(南征不三)" 네 글자였다. 남쪽의 정벌을 세 번 연달아 하지 말라는 결의였다. 형주(荊州)·강동(江東)·서량(西涼)의 세 방면을 한 해 안에 모두 움직일 수는 없다는 한 줄이, 아래에 단정하게 따라붙어 있었다.
여덟 번째 쪽지는 더 짧았다. 맨 위의 세 글자만으로 문단의 무게가 전부 담겼다.
失子哀(아들을 잃은 슬픔).
그 세 글자 아래에, 다섯 줄이 있었다. 조조가 올해 안으로 아끼던 맏이 조앙(曹昂)의 기일이 다가온다는 것, 그러나 조앙은 이미 열 해 전 완성에서 가버렸다는 것, 장남의 자리를 아직 조비(曹丕)가 완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 올해 그 자리를 단정하게 채워 둘 때라는 것.
곽가는 주공이 아버지로서 가장 약해지는 자리를 알고 있었다. 조조가 그 쪽지를 받아 든 저녁, 본영의 장막 안쪽에서 오래 눈을 감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조비를 자기 곁에 더 가까이 세우는 명이 조용히 내려졌다. 조조의 결의라기보다, 곽가의 여덟 번째 쪽지의 뒷면에서 스며 나온 결의였다.

아홉 번째 쪽지는 늦은 봄 아침에 올라왔다. 제목은 "赤壁候(적벽을 기다리다)"였다.
조조는 그 세 글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적벽이라는 지명이, 그의 지도 위에서는 아직 작은 점으로만 놓여 있었다. 강동 남쪽 자락의 긴 벼랑이라는 것 이상을 그는 알지 못했다. 곽가의 아홉 번째 쪽지는 그 작은 점을 가리키며 단지 여섯 자를 적고 있었다.
두 해 뒤, 크게 부러지실 자리이옵니다.
조조는 쪽지를 접어 품 안쪽에 넣었다. 이 쪽지는 다른 쪽지와 달리 책상 위에 두지 않았다. 품 안쪽에 넣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패배를 먼저 말해 준 쪽지는, 승상의 책상 위보다 승상의 가슴 안쪽 자리가 더 알맞았다.
열 번째 쪽지를 곽가는 결국 쓰지 못했다.
건안 12년(207년) 여름, 요동의 두 머리가 도착한 며칠 전부터 그의 왼손도 떨리기 시작했다. 붓이 종이 위에서 온전한 자를 남기지 못했다. 곽가는 마지막 아침에 조조 앞에 열 번째 빈 쪽지를 내려놓았다. 빈 쪽지의 가운데에, 아주 작게 한 글자만이 남아 있었다.
劉.
한 글자였다. 성(姓)이었다. 그 성의 완전한 이름은, 곽가의 왼손이 쓰지 못한 채로 남았다. 이름의 다음 글자를 — 몇 해 뒤 다른 사람의 입이 주공께 불러 드리게 될 것이라는 한 줄이, 쪽지의 귀퉁이에 가느다랗게 적혀 있었다.
조조는 그 빈 쪽지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책상 위에 다른 아홉 장과 나란히 놓았다. 열 장의 쪽지가 한 줄로 늘어섰다. 첫 장의 업성은 이미 닫혔고, 둘째 장의 요동은 이제 막 닫히려 하고 있었고, 아홉째 장의 적벽은 아직 열리지 않은 점이었으며, 열째 장의 한 글자는 — 이름을 기다리는 자리였다.
곽가가 떠난 그 해 가을 이후, 조조는 자기 서재 안쪽 벽에 그 열 장의 쪽지를 한 줄로 걸어 두었다. 벽을 지나는 사람은 없었다. 승상 본인만이 아침마다 그 쪽지 앞에 잠시 멈추어 섰다. 멈추어 서는 호흡이, 매일 조금 짧아지기도 하고, 매일 조금 길어지기도 했다.
쪽지는 유언(遺言)이 아니었다. 유서(遺書)였다. 유언은 입으로 남기는 것이고, 유서는 손으로 남기는 것이다. 입으로 남긴 것은 날아가지만, 손으로 남긴 것은 벽에 걸려서 남는다. 열 장의 쪽지가, 이제는 조조의 아침의 벽이 되어 있었다.
그 벽의 맨 끝 쪽지의 한 글자 劉 아래에, 이름은 아직 쓰이지 않은 채였다. 그 이름이 쓰일 자리에 먼저 도착한 것은 — 남쪽 사내의 세 걸음의 첫걸음이었다. 그 사내의 세 걸음이, 오늘도 신야(新野)의 뒤뜰을 돌고 있었다. 신야의 사내도, 허도의 승상도, 서로의 벽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아침은 팔백 리 떨어진 두 자리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같은 이름을 향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

“✒️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떠난 사람이 남긴 열 장의 종이 가운데, 마지막 한 장에 한 글자만 적혀 있고 이름의 나머지가 비어 있을 때, 그 비어 있음이 오히려 가장 무거운 장이 되는 법이옵니다. 이름을 다 쓰지 못한 쪽지는, 남는 사람의 아침마다 그 이름을 다시 물어 보게 만들지요. 오늘 당신 곁에도, 아직 이름의 뒤가 비어 있는 한 장의 종이가 혹시 있으신지요. 그 빈 뒤를 채우는 일은 — 떠난 분의 일이 아니라 — 오늘 당신 몫으로 넘어와 있는 문장이기도 하옵니다. 어떤 이름은 처음부터 온전히 우리에게 오고, 어떤 이름은 반 글자로만 먼저 도착하여 우리 아침의 벽 위에서 오래 기다리지요. 기다림은 깁니다. 도착은 거의 소리가 없습니다. 매일 그 벽 앞을 지나가지 아니하는 사람은, 도착의 그 순간을 그대로 놓치고 말지요.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