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35] 첫 눈 위의 발자국
5월 · 세 번째 문 | 약 3분 읽기삼국지 365 · Day 135 · Book 1 「별이 모이다」

서서(徐庶)가 떠난 지 열 달 뒤, 건안 13년(서기 208년) 초여름의 어느 이른 새벽이었다.
신야(新野)의 뒤뜰에 첫 눈이 내리는 계절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이틀 전 남쪽에서 올라온 늦봄의 비가 밤중에 서리로 바뀌어, 오늘 새벽 뜰의 돌 위에 얇은 흰 층을 남겨 두었다. 유비(劉備)가 그 서리 위에 첫 발자국을 남겼을 때, 발자국 위로 새벽 햇살이 내려앉았다. 눈이라 부르기에는 얇은 층이었고, 이슬이라 부르기에는 단단한 층이었다.
관우(關羽)와 장비(張飛)가 이미 북문 앞에 서 있었다. 세 필의 말이 한 줄로 서 있었다. 가운데의 말이 적로(的盧)였다. 왼쪽은 관우의 밤톨빛 준마, 오른쪽은 장비의 검은 말이었다. 세 사람의 옷차림은 장수의 것이 아니었다. 갑옷을 걸치지 아니하였다. 허리춤의 검도 가벼웠다. 오늘은 누구를 치러 가는 걸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유비가 말 위에서 품 안의 지도를 다시 폈다.
지도의 남양(南陽) 와룡강(臥龍崗) 한 구석에, 서서가 쓴 여섯 글자가 그대로 있었다. 諸葛孔明 草廬. 그 옆에 지난 가을부터 유비가 덧써 둔 세 글자 第一步도 있었다. 유비는 그 세 글자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다시 접었다. 지도를 품 안에 넣었다.
"운장, 익덕. 오늘의 걸음은 한 사람의 문 앞에 서는 걸음이다. 문이 열리지 아니하여도, 문 앞에서 화내지 말자."
관우가 고개를 숙였다. 장비는 짧게 코를 울렸지만, 결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의 숨결이 새벽 공기 안쪽에서 크게 하얗게 뭉쳤다가 흩어졌다.
신야를 출발한 세 필의 말은 오전 내내 남쪽 길을 달렸다. 정오 무렵, 남양 와룡강 아래의 작은 마을에 닿았다. 마을 앞에는 맑은 개울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개울 옆의 논에서 몇 사람의 농부가 모내기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농부의 차림인데도 몸가짐이 가벼웠고, 눈빛이 맑았다.
유비가 말에서 내려, 그 사람에게 두 손을 모아 물었다.
"농부님. 이 마을에 제갈공명(諸葛孔明)이라는 분이 계시다 들었습니다. 그분의 초려는 어느 쪽이옵니까."
농부는 허리를 펴고 유비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웃었다.
"공명 선생의 초려는 이 강의 위쪽으로 한 리(里)쯤 올라가시면 되오. 다만 오늘 아침에 선생은 벗의 집에 다녀오신다며 자리를 비우셨소."
"언제쯤 돌아오실 것 같사옵니까."
"그것은 선생도 모르시고, 저도 모르오. 어떤 날은 오늘 저녁 돌아오시고, 어떤 날은 열흘이 걸리시오."
농부가 다시 허리를 굽혀 모를 심기 시작했다. 유비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와룡강 언덕 위에, 작은 초가(草家) 한 채가 있었다.
사립문이 닫혀 있었다. 문 위에 臥龍崗 세 글자가 작게 걸려 있었다. 글씨는 단아했다. 획 하나하나가 깊게 파여 있었다.
유비가 사립문 앞에 한 걸음 떨어져 섰다. 관우와 장비는 그 뒤에 세 걸음씩 떨어져 섰다. 유비가 문을 두드리지 아니하였다. 다만 두 손을 모아, 문을 향해 짧게 예를 올렸다. 문 안쪽에서는 소리가 나지 아니하였다. 농부의 말대로였다.
유비는 한참을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거미줄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 거미줄은 오늘 아침 새로 친 것이었다. 주인이 없는 집의 문 앞에, 봄의 거미 하나가 자기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유비는 그 거미줄을 오래 바라보았다.
장비가 뒤에서 짧게 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형의 뒤통수를 본 뒤 다시 내려갔다. 관우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그대로 한참을 서 있었다.
유비가 이윽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 안쪽에 한 조각의 가벼움이 있었다.
"운장, 익덕. 오늘의 걸음은 여기서 되돌리세. 찾아왔다는 것을, 이 문이 기억해 두었을 것이야."
유비가 말머리를 돌렸다. 돌아서면서, 그는 다시 문 위의 세 글자를 올려다보았다. 臥龍崗. 그 세 글자를 읽는 동안, 그의 안쪽 어딘가에서는 이미 이 문이 열리는 저녁의 한 박자가, 먼 앞에서 자기 자리를 고르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의 서리 위에, 세 필의 말발굽 자국이 조용히 새겨졌다. 장비가 말 위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와룡강의 사립문 위의 세 글자가 서리 위의 작은 점으로 멀어져 가고 있었다.
세 사람의 오늘 첫걸음이 — 서리 위의 세 줄의 자국으로 — 남양의 한 언덕과 신야의 뒤뜰 사이에 이어져 있었다. 그 이어짐이 앞으로 두 번 더 남아 있었다. 장비가 속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두 번 더. 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다. 유비는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

“✒️ 평역가의 한 마디 — 연삼흠 박사문이 열리지 아니하는 첫 걸음 앞에서 화내지 아니하고 돌아서는 일이, 그 뒤 두 번째 세 번째 걸음의 박자를 조금씩 단단하게 늘려 주지요. 문을 두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예를 올리고 돌아서는 걸음은 약한 걸음이 아니라 — 가장 단단한 준비의 첫 걸음이옵니다. 오늘 당신 곁에도, 열리지 아니한 사립문 앞에서 조용히 돌아선 적이 있으신지요. 그 돌아섬의 자국이, 훗날 문을 여는 그분에게 먼저 보여 드리는 한 줄의 인사이기도 하옵니다.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