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10월 6일 화요일, 경성의 아침이 밝았다. 닷새 전인 10월 1일 자정을 기해 실시된 간이국세조사의 여운이 아직 거리에 남아 있었다.
10시 10분, 종로 거리에는 조사표를 손에 든 조사원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였다. 지난여름 을축년 큰물의 흔적이 채 가시지 않은 한강변에서는 둑 쌓는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조선이 처음으로 스스로의 숫자를 세어 본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의 경성
10월 1일 0시를 기준으로 실시된 간이국세조사는 조선에서 치른 첫 근대적 인구조사였다. 원래 1920년에 하려던 조사였으나 3·1운동의 여파로 미뤄졌던 것으로 알려진다(우리역사넷 자료). 5년을 돌아 돌아, 1925년에야 비로소 이루어진 셈이다.집계 결과 총인구는 1,952만 2,945명, 그 가운데 남자가 1,002만 943명, 여자가 950만 2,002명이었다(한국사데이터베이스 자료). 조사 대상은 조선 사람과 일본 사람, 그리고 조선 땅에 머무는 외국 사람 모두를 아울렀다.숫자를 세는 일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었다. 조선이념부는 이 조사를 효율적인 식민 통치와 자원 동원의 기초 자료로 삼으려 했다(민족문제연구소 자료). 조사표를 받지 않거나 거짓으로 적어 낸 사람에게는 벌칙이 따랐다. 경찰이 조사원과 함께 집집을 찾아다니며 확인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았다.10월 6일 현재, 지역별·직업별 세부 집계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자 신문 1면의 정확한 머리기사 원문은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 안 됨]
경성과 한반도지난 7월, 두 차례에 걸친 폭우로 753밀리미터에 이르는 비가 쏟아졌다. 지금의 이촌동·뚝섬·잠실·송파·풍납동 일대 마을이 통째로 떠내려갔고, 용산·마포·영등포의 집들도 대부분 물에 잠겼다. 피해액은 조선이념부 한 해 예산의 58퍼센트에 이르는 1억 300만 원으로 헤아려졌다(한강역사이야기 자료).가을이 깊어 가던 10월에도 복구는 끝나지 않았다. 조선수해이재자구제회가 모은 돈으로 살림을 잃은 사람들을 도왔고, 한강 둑을 다시 쌓는 공사에는 선유봉을 깨뜨려 얻은 돌과 흙이 쓰였다. 인구를 세는 일과 물난리를 추스르는 일, 이 두 가지가 같은 가을 하늘 아래 나란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날의 세계같은 시각 유럽에서는 스위스의 작은 도시 로카르노에서 큰 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10월 5일부터 16일까지 이어진 이 회담에는 프랑스의 브리앙, 영국의 체임벌린, 독일의 슈트레제만, 벨기에의 반더벨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자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을 치른 나라들이 다시는 서로 총을 겨누지 않기로 다짐하는 자리였다.10월 6일은 회담이 시작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중국에서는 5월의 5·30운동과 7월 상해 총파업의 여진이 가시지 않은 채, 국민당과 공산당의 합작 아래 정세가 요동치고 있었다. 조선의 신문이 이 소식들을 그날 어떻게 다루었는지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확인 안 됨]

경성 24시화요일 아침, 관공서와 경찰서는 여느 때보다 분주했다. 국세조사령에는 조사를 거부하거나 거짓으로 답한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 있었고, 미처 조사받지 못한 집을 다시 찾아가는 일이 이어졌다.낮이 되면 종로와 남대문 근처 저잣거리에는 사람들이 오갔다. 조사표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다고 전해지나, 구체적인 대화 내용까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확인 안 됨]해거름이 되면 한강변 공사장의 일꾼들도 하나둘 연장을 내려놓았다. 을축년 큰물이 남긴 생채기는 아직 아물지 않았지만, 둑은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100년의 거울
1925년의 간이국세조사와 오늘날의 인구총조사를 나란히 놓아 본다.
| 항목 | 1925년 | 2025년조사 방식조사원 방문·수기 기록온라인 등록·행정자료 연계조사 근거국세조사령(식민 통치 목적) | 통계법(정책 수립 목적) |
|---|---|---|---|
| 총인구 | 1,952만 2,945명(전 조선) | 약 5,100만 명(대한민국, 참고치) | |
| 불응 시벌칙 규정과태료 규정(협조 원칙) |
같은 ‘숫자 세기’라도, 그 숫자가 누구를 위해 쓰이는지는 시대마다 달랐다.

내일, 1925년 10월 7일 수요일의 경성으로 다시 찾아간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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