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획은 완벽하게 무너진다. 라온이가 방학 하루 전 거실 바닥에 펼친 계획표에서 확인되는 것은 다짐이 아니라 좌절의 예고다. 수학 문제 풀기부터 수건 개기까지 빽빽하게 채운 계획표를 보며 신나게 웃는 장면과, 그 계획표가 하루 만에 무너지는 장면은 나란히 붙어 있다. 윤예지 작가의 첫 그림책 얼렁뚱땅 방학 계획표 짜기는 계획을 잘 세우는 법이 아니라, 계획이 무너진 뒤 다시 일어서는 법을 이야기한다. 이 지점이 여느 방학 생활 지도서와 이 책을 가른다.
무리한 목표 설정이 코르티솔 분비를 촉진해 오히려 동기를 떨어뜨린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경로로 알려져 있다. 계획을 크게 세울수록 성취도가 아니라 좌절감이 먼저 쌓이는 구조다. 아동 그림책 분야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흠 없는 습관표를 제시하기보다 실패와 조정의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서사가 늘고 있다. 완벽한 결과보다 시행착오를 견디는 태도를 가르치려는 흐름이다. 자기조절과 메타인지를 아이 눈높이에서 다루려는 국제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이 책 역시 라온이의 실패를 감추거나 서둘러 봉합하지 않고, 침대에 엎드려 우는 순간까지 그대로 옮겨 놓는다.
구성은 저자소개, 본편 얼렁뚱땅 방학 계획표 짜기, 작가의 말 세 부분으로 짜여 있다. 본편은 라온이가 계획표를 짜는 장면에서 시작해 계획이 무너지고 좌절하는 국면을 거쳐, 스스로 현실적인 계획표로 고쳐 쓰는 데서 끝난다. 실패와 수정을 한 호흡으로 이어 붙인 짧은 서사 구조다. 별도의 훈계나 정답 제시 없이 아이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도록 짜여 있다. 계획표라는 익숙한 소재를 빌려 오되, 결과가 아니라 계획을 대하는 태도 쪽으로 초점을 옮긴 셈이다.
방학을 앞둔 초등 저학년과 그 보호자가 우선 독자층이다. 계획을 세우다 지친 아이, 혹은 아이의 계획표를 함께 짜는 부모 모두에게 걸리는 지점이 있다. 목표를 줄이는 법이 아니라 목표가 무너졌을 때 감정을 다루는 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간관리보다 감정코칭에 가까운 독서로 읽힌다. 아이와 함께 계획표를 짜기 전, 혹은 이미 무너진 계획표를 앞에 두고 실랑이를 벌인 뒤 펼쳐도 결이 맞는 책이다.
원고는 라온이가 거실 바닥에 커다란 계획표를 쫘악 펼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넣을 거야!’ 라온이는 신 나게 계획표를 짜기 시작한다. 미리보기에 담긴 대목처럼, 방학 하루 전 수학 문제 풀기부터 수건 개기까지 빽빽하게 채운 계획표를 짜며 웃던 장면은 이내 다른 국면으로 넘어간다. 커다란 종이를 펼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잔뜩 상상하는 순간의 두근거림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하지만, 그 두근거림이 그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책은 이 웃음과 이어지는 좌절 사이의 낙차를 감추지 않는다.
제목이 ‘얼렁뚱땅’인 이유는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분명해진다. 빽빽한 계획표와 헐거운 계획표 사이, 라온이가 실제로 골라 쓰는 쪽이 이 책의 결론이다. 완벽한 시간표 대신 지킬 수 있는 계획표를 택하는 과정 자체가 메시지이며, 그 판단을 아이 스스로 내리게 한 구성이 이 그림책의 핵심이다.
얼렁뚱땅 방학 계획표 짜기는 2026년 8월 1일 전자책(PDF)으로 출간된다. 정가는 5,000원이며, 출판사는 WIA Book이다. 계획표를 다시 쓰는 라온이의 장면을 아이와 함께 읽으며, 무너진 계획 앞에서 어떤 말을 건넬지 미리 생각해볼 만하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https://wiabook.com/books/eolreongttungttang-banghak-gyehoekpyo-jjagi-ko/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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