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저는 난징의 한 지역 커뮤니티센터에서 예순셋의 왕슈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침 아홉 시, 그는 이미 완장을 차고 있었습니다. 시간은행 자원봉사자 완장이었습니다. “오늘은 여든넷 할머니 댁에 가서 장을 봐드리고 말벗을 해드릴 거예요.” 그렇게 말하며 웃던 그의 표정에는 의무감이 아니라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 여유가 어디서 오는지, 저는 그날 오후가 다 지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왕 할머니가 하는 봉사는 그냥 봉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남을 돌본 시간은 앱에 기록되어 쌓이고, 훗날 자신이 돌봄이 필요할 때 그 시간만큼 서비스로 돌려받는 구조였습니다. 챕터를 취재하며 만난 중국노령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老有所为(노유소위) — 늙어서도 할 일이 있다. 이것이 은령행동의 핵심 철학입니다. 자원봉사는 노인을 수혜자에서 기여자로 전환시키는 가장 강력한 사회적 장치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수첩에 옮겨 적으며, 한국에서 제가 만나온 어르신들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숫자로 보면 그 차이는 더 선명해집니다. 2025년 9월 기준 중국 전국 자원봉사 정보시스템에 등록된 노인 자원봉사자는 5,358만 명, 누적 봉사시간은 16억 4천만 시간에 달합니다. 60세 이상 인구 3억 1천만 명 가운데 상당수가 이 생태계 안에 있는 셈입니다. 반면 한국의 65세 이상 자원봉사 참여율은 7.4%에 머뭅니다. OECD 평균이 15~20% 선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서, 같은 속도로 늙어가는 두 나라가 이토록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 저를 오래 붙들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저는 서울 종로의 한 노인일자리 사업단에서 김정자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는 월 30시간 공익활동에 참여하며 29만 원의 활동비를 받고 있었습니다. “돈이 크진 않지만, 이거라도 없으면 아침에 나갈 데가 없어요.” 그의 말은 왕 할머니의 말과 결이 달랐습니다. 왕 할머니가 ‘내일의 나를 위해 저축한다’고 말했다면, 김 할머니는 ‘오늘 갈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노인을 사회 안에 붙잡아두려 하지만, 그 설계 사상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한국은 유급 일자리를 통한 참여를, 중국은 호혜적 돌봄 경제를 통한 참여를 택한 것입니다.
저는 이 두 만남이 단순한 대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2003년부터 운영해온 은령행동은 누적 참여 700만 인차, 수혜자 4억 명이라는 규모에 이르렀고, 여기서 파생된 시간은행은 현재 전국 54개소, 등록 자원봉사자 32만 명, 수혜자 220만 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 숫자들이 의미 있는 이유는 규모 때문만이 아닙니다. ‘봉사가 곧 저축’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도 강원도 우리동네 시간은행, 서울 성북구 타임뱅크 같은 시범 사업이 있지만, 아직 전국 단위 표준 인증체계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이 격차의 배경에는 인구 구조와 정책 철학의 차이가 함께 자리합니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이미 1,024만 명, 19.2%를 넘어섰지만 노인 정책의 무게중심은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대상’으로서의 노인에 맞춰져 있습니다. 반면 중국은 2024년 11월 ‘신시대 은령행동 지도의견’을 통해 참여 주체를 노년 지식인에서 전체 노인으로 넓히고, 온·오프라인 결합 모델을 도입하며 ‘노인을 사회 인프라로 재정의’하는 쪽으로 정책 언어 자체를 바꿔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70%를 넘는 중국 노인 세대의 디지털 역량도 이 전환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며 만난 한 통계 전문가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은 지금 ‘9073 모델’이라는 말을 씁니다. 90%는 집에서, 7%는 지역사회에서, 3%만 시설에서 노년을 보낸다는 뜻이죠. 이 90%를 지탱하는 힘이 바로 이웃 노인들의 자원봉사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왕슈친 할머니가 매일 아침 완장을 차고 나서는 이유를 다시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선의라기보다, 국가가 처음부터 설계에 넣어둔 돌봄 시스템의 한 축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해온 노인맞춤돌봄서비스와 지역사회 통합돌봄 시범사업은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2024년 기준 이 사업에 실제로 참여하는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5%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저는 두 나라를 오가며 취재하는 동안, 제도의 유무보다 ‘노인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라는 인식의 차이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는 나이 든 이웃을, 돌봄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여전히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저는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세대, 혹은 우리 자신의 노년을 ‘돌봄받는 시기’로만 그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왕슈친 할머니가 오늘 돌본 시간이 내일 자신을 돌보는 시간으로 돌아온다는 그 단순한 원리는, 사실 세대를 넘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안전망의 언어일지도 모릅니다. 노인 자원봉사를 여가가 아니라 사회적 인프라로, 시혜가 아니라 호혜적 생태계로 바라보는 시선의 전환이 지금 한국에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10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왕슈친 할머니와 김정자 할머니를 비롯해 제가 두 나라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들의 더 많은 이야기, 그리고 한중 시간은행 비교 데이터를 함께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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