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서울 은평구의 한 경로당을 찾았던 날이 떠오릅니다. 오후 세 시, 방 안에는 화투 패 부딪히는 소리와 낮은 웃음소리만 조용히 오갔습니다.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예닐곱 분이 둘러앉아 계셨고, 창밖으로는 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베이징의 한 광장에서 저는 전혀 다른 풍경과 마주했습니다. 저녁 여섯 시, 스피커 하나가 켜지자 순식간에 수백 명이 모여 같은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노년, 같은 외로움을 채우는 방식이 이토록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제 안에 오래 남았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은 인류 보편의 본능입니다. 다만, 그 ‘모임’의 형태와 규모, 사회적 의미는 나라마다 크게 다릅니다.” 경로당 한 켠에서 조용히 바둑돌을 놓는 어르신과, 광장 한복판에서 수백 명과 함께 춤추는 어르신은 사실 같은 욕구 — 외롭지 않고 싶다, 쓸모 있고 싶다 — 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문장을 쓰면서 저는 두 나라 어디에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숫자 하나였습니다. 2024년 한국의 고독사 사망자 수가 3,924명으로 전년 대비 7.2% 늘었다는 보건복지부 발표를 접했을 때, 저는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를 들여다보니 65세 이상 노인의 동호회 활동 참여율은 6.6%에 불과했습니다. 친목단체 활동 참여율 54.2%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입니다. 전국에 경로당·복지관·노인교실 등 노인여가복지시설이 7만 455개소나 운영되고 있는데도, 실제 동호회 참여율과 향후 희망 참여율(38.6%)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었습니다. 하고 싶어도 갈 곳을 못 찾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들고 중국으로 건너가자 완전히 다른 그림이 펼쳐졌습니다. 전국 노년대학(老年大学)이 7만 6천여 곳, 등록 학원 수는 2,000만 명을 넘어섰고, 광장무 참여 인구만 약 1억 명으로 추산됩니다. 서예, 태극권, 성악, 스마트폰 활용법까지 강좌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현지에서 만난 노년대학 관계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3억 노인 중 60%가 입학을 원하지만, 실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원은 8% 정도밖에 안 됩니다. 한 자리 쟁탈전이라고 부를 만하죠.” 규모는 훨씬 컸지만, 그 안에서도 결핍은 여전했습니다.
이 두 풍경을 나란히 놓고 보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참여율이라는 숫자만으로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한국의 동호회 문화는 ‘정(情)’ 중심의 소규모 관계망이고, 중국의 그것은 ‘집단열정(集体热情)’이라 부를 만한 대규모 조직력입니다. 한국노인간호학회지의 2024년 연구는 노인의 사회적 단체활동과 참여가 늘어날수록 우울증과 외로움이 줄고 사회적 고립 인식도 낮아진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형태가 무엇이든, 결국 사람과 사람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2024년 통계청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79세 노인의 평생교육 참여율은 23.5%에 달했고, 노인들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답한 항목도 경제활동(25.4%)이나 친목활동(19.3%)이 아니라 ‘취미·여가활동'(37.7%)이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서예, 사진, 등산, 우쿨렐레 같은 취미 특화 동호회를 찾는 분들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처럼 새로운 형태의 교육·동호회 공간을 지자체가 직접 만들어가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자율에 맡겨두던 경로당 문화에, 조금씩 체계가 더해지는 시기라고 느꼈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동네 경로당은, 우리 부모님 세대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 하루를 채우고 계실까. 화투를 두는 것도, 노래교실에 나가는 것도, 그저 텔레비전 앞에 홀로 앉아 계신 것도 다 다른 선택입니다. 혹시 곁에 계신 어르신께 오늘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셨는지, 함께 갈 만한 모임은 없는지 한번 여쭤보시는 건 어떨까요.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어도, 작은 관심 하나가 그 공백을 메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취재 노트를 다시 펼쳐보면 유독 밑줄 그어둔 문장이 있습니다. “노년의 사회활동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 다만 그 생존의 방식을 국가가 설계하느냐, 개인이 알아서 찾아야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제가 책에 남긴 이 문장은, 두 나라를 오가며 가장 오래 곱씹었던 대목이기도 합니다. 한국은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며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중국 역시 2024년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2억 2천만 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15.6%를 차지합니다. 두 나라 모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사회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그 속도에 대응하는 방식은 사뭇 달랐습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노년대학과 광장무 인프라를 밀어붙이며 ‘조직된 노년’을 만들어갔고, 한국은 경로당이라는 오래된 공동체 단위를 중심으로 ‘자생적 노년’을 지켜왔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줄 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인구구조가 뒤집히는 속도가 정책이 따라가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사실만큼은, 두 나라 모두에게 똑같이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라면 나이 들어 하루의 빈 시간을 무엇으로, 누구와 함께 채우고 싶으신가요.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1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경로당과 광장무 사이에서 제가 만난 어르신들의 목소리, 그리고 한중 노년동호회 문화를 둘러싼 더 많은 통계와 현장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위아북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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