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8월 5일 목요일, 경성의 아침은 여느 때와 달랐다. 조간을 펼친 사람들은 한 장의 기사 앞에서 숨을 멈췄다. 이틀 전 밤, 현해탄을 건너던 연락선에서 젊은 성악가와 극작가가 함께 사라졌다는 소식이었다. 순종 임금이 세상을 뜬 지 백일 남짓, 나라 전체가 아직 흰 상복을 벗지 못한 때였다. 그 위에 또 하나의 슬픈 이야기가 얹혔다.

그날의 경성동아일보는 이날 “현해탄 격랑 중에 청년 남녀의 정사”라는 제목 아래 이 사건을 크게 다뤘다. 8월 4일 새벽,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연락선 덕수환(德壽丸) 갑판에서 두 사람이 함께 사라졌다. 배 안 승객 명부에는 본명 대신 김수산, 윤수선이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었다. 선실에는 짐을 집으로 보내 달라는 짧은 쪽지 한 장만 남았다.
사라진 여성은 성악가 윤심덕이었다.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음악학교에서 성악을 배운 조선 첫 세대 여성 음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얼마 전 오사카의 한 레코드사에서 노래 한 곡을 녹음해 두었다. 왈츠 곡조를 빌려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 ‘사의 찬미’였다. 함께 사라진 남성은 극작가 김우진. 목포의 이름난 지주 집안 맏아들로 와세다대학에서 공부하며 조선 신극 운동에 뛰어든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이미 아내와 자녀가 있었다.
수색대가 며칠째 현해탄을 훑었지만 두 사람의 자취는 끝내 찾지 못했다. 두 사람이 도쿄 유학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경성 거리는 온통 이 소식으로 술렁였다.

경성과 한반도이 비극이 전해진 시점, 조선은 아직 큰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순종 임금이 세상을 뜬 지 백일이 조금 지난 때였고, 그 인산일이었던 6월 10일에는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거리로 나섰다가 무더기로 붙잡혀 갔다. 경성에서만 210명 넘게 잡혀갔고, 전국적으로는 천 명 가까운 학생이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열한 명은 재판에 넘겨져 그해 가을 법정에 설 예정이었다.
나라의 임금을 잃고,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이 갇히고, 이제는 촉망받던 예술가 두 사람마저 바다로 사라졌다는 소식까지 겹치면서, 8월의 조선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신문과 잡지는 두 사람의 마지막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쏟아냈고, 몇 달 뒤 ‘사의 찬미’ 음반이 나오면서 이 이야기는 노래를 타고 조선 전역에 다시 퍼져 나가게 된다.

그날의 세계같은 날 대서양 건너 뉴욕에서는 영화의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있었다. 워너브라더스가 ‘바이타폰’이라는 새 장치를 앞세워 소리가 입혀진 장편영화 ‘돈 후안’을 처음으로 선보인 것이다. 그때까지 영화는 화면만 돌아가고 소리는 극장 악단이 채워 넣는 것이 당연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영화에 목소리와 음악을 그대로 담아내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조선의 극장가에도 언젠가 이 변화가 닿으리라는 것을, 그날 경성의 독자들은 알지 못했다. 세계 곳곳에서는 이 무렵 그리스에서 정치가 요동치고, 유럽에서는 젊은 수영선수가 영불해협 횡단에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선은 국상과 죽음의 소식으로 무거웠지만, 지구 반대편은 또 다른 속도로 새로운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경성 24시이날 경성 거리는 온통 이 소식 하나로 시끄러웠다. 찻집에서는 손님들이 신문을 펼쳐 놓고 두 사람의 마지막을 이야기했고, 음악학교와 극단을 오가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안타까움 섞인 탄식이 끊이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남의 이야기에 마음을 나눌 짬조차 흔치 않았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누군가는 두 사람의 선택을 안타까워했고, 누군가는 시대가 두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고 말했다. 여자가 유학까지 다녀와 노래로 이름을 얻어도, 남자가 이미 아내를 둔 몸이어도 마음대로 사랑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저물녘 종로 거리에는 이 소식을 전하는 목소리가 골목마다 이어졌다.

100년의 거울
100년이 지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스스로 정하지 못해 목숨을 끊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여성이 유학해 전문 직업을 갖는 일도, 이미 가정이 있는 사람과의 관계가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일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다. 하지만 ‘사의 찬미’는 10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불리는 노래로 남아, 그 시절의 슬픔을 기억하게 한다.
| 항목 | 1926년 | 2026년혼인의 자유집안이 정한 혼처, 기혼자의 새 인연은 사회적 파문개인의 선택, 이혼과 재혼이 자유로움여성의 사회 진출관비 유학은 극소수 여성에게만 허락유학·전문직 진출이 보편화소식이 퍼지는 속도신문 한 장, 입에서 입으로 며칠실시간으로 전국에 전파내일, 영불해협 너머에서는 한 여성 수영선수가 거센 파도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경성은 오늘의 슬픔을 안은 채 또 하루를 맞는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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