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고구려 편] 제18화: 두 전선의 전쟁, 나당연합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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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고구려 편

제18화: 두 전선의 전쟁, 나당연합의 그림자

동맹은 언제나 두 얼굴을 갖는다 — 누군가를 지켜주는 방패이자, 다른 누군가를 옥죄는 올가미.

연개소문이 죽고 그의 아들들이 권력을 놓고 다투기 훨씬 전부터, 고구려의 운명을 가를 그물은 이미 짜이고 있었다. 660년 여름, 사비성이 불타고 의자왕이 무릎을 꿇었을 때 평양의 조정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들이 상대하는 것은 더 이상 수·당의 단독 침공이 아니라, 바다 건너 제국과 한반도 남쪽 왕국이 하나로 묶인 협공 체제라는 사실을.

8년 뒤 평양성 함락(제19화)이라는 결말은 이미 이 순간, 백제가 사라진 그 여름에 절반쯤 쓰여 있었다. 왜 고구려는 그 많은 성과 그 강한 군대를 갖고도 벗어날 수 없었을까. 답은 전장이 아니라 외교 지도 위에 있었다.

◆ 시대의 풍경

이야기는 6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장군 윤충이 신라의 대야성(합천)을 함락시키면서 성주 품석과 그 아내 고타소랑이 목숨을 잃었다. 고타소랑은 김춘추의 딸이었다. 딸을 잃은 김춘추는 그해 곧장 고구려로 건너가 원병을 청했지만, 연개소문은 죽령 이북 옛 고구려 땅을 먼저 돌려달라며 그를 억류했다. 왜(倭)에도 사신을 보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고구려와 왜, 두 우방 후보 모두에게 거절당한 신라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바다 건너 당(唐)이었다.

648년, 김춘추는 직접 당의 수도 장안으로 들어가 태종 이세민과 담판을 지었다. 당은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한 뒤 ‘평양 이남 백제 토지’를 신라에 넘기기로 약속했다. 이로써 나당군사동맹, 이른바 나당연합이 결성되었다. 신라에게는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지만, 고구려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자신을 포위할 두 개의 칼끝이 하나로 이어졌다는 뜻이었다.

“만약 대국(당)의 군사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입니다.”

– 648년 김춘추가 당 태종에게 원병을 청하며 남긴 말,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덕왕조 관련 기록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당 고종 즉위 초반(649년~), 태종의 대외정책을 이어받아 신라와의 동맹을 유지하며 한반도 개입을 지속했다.

🗿 사산조 페르시아

신흥 이슬람 세력에 밀려 651년경 왕조가 완전히 멸망했다. 오랜 제국이 새로운 연합 세력 앞에 급속히 무너진 유사 사례다.

🌏 왜(倭)

백제와의 오랜 우호관계를 이어갔지만 결정적 군사개입 시점을 놓쳤고, 훗날 663년 백강 전투에서 뒤늦게 참전해 대패한다.

나당연합군의 협공, 648~660년 고구려 백제 신라 唐 산둥반도 신라 서라벌 660.7 사비성 함락 661~668 평양, 최후의 저항

[이미지: 나당연합군의 남북 협공과 백제 멸망(660년), 고구려의 고립]

⚔️ 그날의 현장

“660년 여름, 부여군 근처 큰 바위 위에 귀신이 나타나 땅속에 글을 묻었다. 사람들이 파보니 이런 글귀가 나왔다. ‘백제는 둥근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의자왕이 무당에게 그 뜻을 묻자 무당이 답했다. ‘둥근달과 같다는 것은 가득 차서 이지러질 것이요, 초승달과 같다는 것은 아직 차지 않아 점점 차 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왕이 노하여 무당을 죽였다.”

며칠 뒤 황산벌에서 계백의 5천 결사대가 전멸하고, 사비성 문이 열렸다. 참언은 예언이 아니라 이미 기울어진 저울의 그림자였을 뿐이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660년 음력 7월,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 13만과 김유신의 신라군 5만이 각각 바다와 육로로 백제를 협공했다. 탄현과 백강의 방어선이 뚫리고, 계백의 5천 결사대가 황산벌에서 전멸한 뒤 사비성은 음력 7월 18일 무렵 함락되었다. 웅진성으로 피신했던 의자왕은 성주 예식진의 배신으로 나당연합군에게 넘겨져 항복했다. 백제라는 한 왕조가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고구려에게 백제의 멸망은 단순히 이웃 나라를 잃은 사건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고구려·백제·왜 삼각 협력축이 만들어 온 남방 완충지대가 통째로 사라졌고, 신라와 당은 이제 옛 백제 영토를 발판 삼아 곧바로 고구려의 허리를 찌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이듬해인 661년, 소정방은 대군을 몰아 평양성을 포위했다. 비록 겨울 추위와 보급 문제로 포위를 풀고 물러났지만,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662년, 굶주린 당군에게 군량을 대기 위해 김유신은 5만 명이 한 달을 버틸 군량을 이끌고 임진강(칠중하)을 건너 평양 인근까지 침투하는 위험한 작전을 강행했다. 고구려군의 추격을 소를 이용한 기만술로 따돌리고서야 신라군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무렵 고구려의 전통적 우군이었던 북방의 돌궐·설연타는 이미 당에 복속되거나 궤멸된 뒤였다. 말갈은 갈라져 일부는 고구려 편에, 일부는 당 편에 섰다. 남으로는 신라·당, 북으로는 당의 다국적군이 동시에 압박하는 진짜 ‘두 전선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왜는 백제 부흥운동을 도와 663년 백강에서 참전했지만 대패했고, 이로써 고구려가 기댈 수 있는 외부 우방은 사실상 소멸했다. 665년 무렵(일부 사서는 666년으로 기록) 연개소문이 죽고 아들들이 권력 다툼을 벌인 것은 이 고립무원의 상황 위에 얹힌 결정타였을 뿐, 붕괴의 진짜 뿌리는 이미 648년의 외교 담판과 660년의 백제 멸망에 있었다.

시대

648년~662년

핵심 인물

김춘추, 김유신, 소정방, 의자왕

핵심 사건

나당동맹 결성·백제 멸망

영향

고구려 양면전쟁·국제고립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나당동맹은 고구려·백제의 협공으로 존립이 위태롭던 신라가 선택할 수 있었던 사실상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는 해석이 다수설이다.

대안적 견해

일부 연구자는 ‘평양 이남 백제 토지’라는 모호한 약속이 훗날 나당전쟁(670~676년)의 불씨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 동맹을 단기적 생존과 장기적 위험을 맞바꾼 도박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본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648년 김춘추가 고구려와 왜의 문을 두드리다 거절당하고서야 당으로 향했다는 사실은, 외교란 결국 ‘누가 먼저 손을 내밀었는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손을 잡아주었는가’로 판가름 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대로 고구려는 남쪽의 백제를 잃고, 북쪽의 돌궐·설연타를 잃고, 마지막 우방 왜마저 백강에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고립이 누적되는 과정을 겪었다.

오늘날 한국이 처한 자리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강대국 사이에 낀 지정학적 위치, 다자 안보협력의 필요성, 공급망과 기술동맹에서 ‘누구와 묶이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은 1,300여 년 전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나당연합은 신라에게는 생존의 열쇠였지만 고구려에게는 사형선고였다 — 동맹의 이편과 저편이 같은 사건을 정반대로 겪는다는 사실을 역사는 잊지 말라고 말한다.

구분 고구려 시대 현재
정치/안보 남북 양면전쟁, 우방 붕괴로 인한 전면적 고립 주변 강대국 사이 균형외교와 다자안보 협력 필요성
군사/외교 신라·당의 군사동맹과 협공 작전 한미동맹·다자 안보협의체 중심의 연합방위
문화/정신 끝까지 저항한 상무정신과 결사항전 위기 속 국민적 결집력, K-안보·K-외교의 재발견

고립과 동맹, 그때와 지금 고구려 돌궐(이탈) 왜(백강 패전) 신라 당 현재: 다자 동맹 네트워크 속의 대한민국 한국 미국 일본

[이미지: 648~668년 고구려의 외교적 고립 구조와 현대 다자동맹의 대비]

📚 더 깊이 알아보기

  • 부여 부소산성·관북리 유적에서 확인된 660년 전후 화재·파괴 흔적은 사비성 함락의 급박함을 뒷받침한다.
  • 임진강 유역 칠중성 일대는 김유신의 662년 군량 수송로로 지목되며, 관련 산성 유구가 여전히 조사되고 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백제본기·고구려본기와 《삼국유사》 기이편을 함께 읽으면 같은 사건도 삼국의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르게 서술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성벽의 두께나 병사의 숫자보다 먼저 무너진 것은, 홀로 서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외교였다.

“동맹을 얻은 나라는 살아남고, 고립된 나라는 스스로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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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연개소문의 죽음 – 내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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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고구려 편 (총 4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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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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