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늦가을, 저는 서울 변두리의 작은 경로당 문을 열고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열두어 분이 화투판과 화분 사이에 둘러앉아 계셨고, 그중 한 어르신이 저를 보시더니 “새 얼굴이네, 이리 앉아” 하며 자리를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 베이징 외곽의 한 공원 광장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했습니다. 저녁 여섯 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수백 명이 한꺼번에 팔을 뻗고 발을 구르는 광장무의 물결이었습니다. 같은 노년의 저녁이었지만, 두 장면은 마치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그 두 저녁의 기억을 붙잡고, 노인의 사교권을 ‘질’과 ‘양’이라는 잣대로 함께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제 책 「실버 브릿지」 취재 노트에는 광장무를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광장무는 중국 노인에게 자발적 커뮤니티, 정보 교류의 장, 그리고 정서적 지지 네트워크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복합 사교 플랫폼이다.” 실제로 그날 제가 만난 한 할머니는 춤이 끝나자마자 옆 사람과 손자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이에게는 병원 정보를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낮은 진입장벽, 그것이 광장무의 가장 큰 힘이라는 걸 그 자리에서 실감했습니다. 마작(麻将)과 더불어 중국 노인의 15.86%가 참여한다는 이 문화는, 누구든 그저 그 자리에 서기만 하면 무리에 섞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관대한 사교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숫자를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집니다.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3%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중국 역시 2024년 말 기준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031만 명, 전체의 22.0%에 달합니다. 그런데 사교 방식은 정반대로 갈립니다. 한국 노인의 단체 참여율은 57.1%로 중국의 26.1%를 훌쩍 앞섭니다. 대신 한국의 60세 이상 사회적 고립도는 40.7%로, 19~29세의 24.5%보다 16.2%포인트나 높습니다. 혼자 사는 어르신 다섯 분 중 한 분 가까이는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를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반대로 중국은 26.1%가 사회단체에 참여하고 광장무 인구만 1억 명을 넘지만, 정서적 고독률은 38%에 이릅니다. 많은 사람 곁에 있어도 마음은 비어 있는 셈입니다.
제가 취재 중 자주 떠올린 표현이 바로 ‘군중 속의 고독’이었습니다. 중국 농촌의 ‘공소노인(空巢老人)’, 그러니까 자녀가 도시로 떠나고 남은 빈 둥지의 어르신들은 광장무 대열 한가운데 서 있어도 정작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한국의 경로당은 정(情)으로 똘똘 뭉친 소규모 공동체입니다. 수십 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이웃, 같은 교회나 절을 다니는 신도,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이 3대 축을 이룹니다. 문제는 이 깊은 정이 너무 배타적이라는 점입니다. 제가 방문했던 경로당에서도, 배우자를 여의거나 이사를 하면서 오랜 모임에서 멀어진 뒤 다시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한국 노인 자살률이 인구 10만 명당 42.2명으로 OECD 평균의 2.6배에 이른다는 수치 뒤에는, 이런 고립의 얼굴들이 겹쳐 있었습니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놓고서야 저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질이냐 양이냐를 가르는 질문 자체가 어쩌면 틀렸다는 것을요. 2025년 국제 학술지 「Aging & Mental Health」에 실린 연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적 관계의 질이 양보다 외로움을 더 잘 설명하며, 배우자와의 관계는 갈등이 있더라도 외로움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반면 자녀와의 관계에서 친밀감이 부족하거나 갈등이 존재하면 오히려 외로움이 증가한다.” 결국 중요한 건 몇 명을 아느냐가 아니라, 그 관계가 얼마나 깊이 마음을 향하고 있느냐였습니다. 다만 저는 그 질 좋은 관계도, 처음에는 누군가 문을 열어 주는 ‘양적’ 기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 또한 잊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개인의 성향이나 취향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입니다. 한국은 초고령사회 진입과 함께 매년 고독사가 늘고 있고, 2024년 고독사 사망자 3,924명 중 60대가 32.4%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중국은 3억 명이 넘는 고령 인구를 떠안은 채 도농 간 사교 인프라 격차라는 또 다른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가 사회적 고립을 세계적 건강 우선순위로 지정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이제 노년의 사교는 개인이 알아서 챙길 여가가 아니라, 두 나라 모두가 새로운 사회 안전망으로 설계해야 할 영역이 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친구 100명과 얕게 안부를 주고받는 삶과, 진심을 터놓을 단 한 사람이 있는 삶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기우시나요. 저는 이 질문에 섣불리 답을 내리지 않으려 합니다. 다만 제가 만난 어르신들을 통해 배운 건, 좋은 관계는 대개 낯선 자리에 한번 발을 들이는 작은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로당 문을 두드리는 일이든, 광장무 대열 끝에 슬쩍 끼어드는 일이든 말입니다. 오늘 하루, 오래 연락하지 못한 이웃이나 어르신께 안부 한마디를 건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돈과 관계」 제14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노인의 사교 통계와 현장의 목소리, 그리고 두 나라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지점들을 더 깊이 다루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3-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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