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베이징 외곽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일흔여덟의 왕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설 명절이었고, 그는 손자에게 위챗으로 홍바오(세뱃돈 봉투)를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지폐를 직접 건네던 시절을 그리워할 줄 알았는데, 그는 오히려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이게 더 빠르고, 얘가 바로 확인하니까 좋다”고 웃었습니다. 저는 그 손끝의 익숙함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노년의 디지털 연결이란 게 결국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날 처음 실감했습니다.
[히어로 이미지: 한국 할머니의 카카오톡 이모티콘, 중국 할아버지의 위챗 홍바오 — 디지털로 이어지는 노년의 일상]
제 책의 취재 과정에서 만난 칭화대 노년정보연구소의 자오이페이 연구원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위챗을 쓰지 못하면 버스표 한 장 사는 것조차 낯선 일이 됩니다. 중국의 노인에게 위챗은 스마트폰 앱이 아니라 거리로 나가는 문입니다.” 저는 이 한 문장이 중국 노년의 디지털 현실을 가장 정확히 요약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원 예약도, 지하철 QR 결제도, 아파트 출입증도 전부 그 작은 초록 앱 안에서 처리되니까요.
취재하며 마주한 숫자들도 놀라웠습니다. 2025년 기준 위챗의 월간 활성 사용자는 약 14억 8천만 명이고, 그중 51세 이상 이용자가 전체의 22.7%로 24세 이하 청년층을 이미 앞질렀습니다. 60세 이상 이용자가 위챗 전체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의 절반가량을 소비한다는 분석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이것이 단순한 ‘설치율’이 아니라 ‘생활 밀착도’를 보여주는 숫자라고 느꼈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습니다. 통계청 고령자통계를 보면 65세 이상의 93.9%가 인스턴트 메신저를 쓰고, 주된 용도는 압도적으로 ‘대화하기’였습니다. 70대 이상 스마트폰 보유율이 73%를 넘어선 것도 최근 2024년의 일입니다.
[차트 이미지: 한국 65세+ 메신저 이용률 93.9% vs 중국 50-80세 위챗 이용률 98.5%, 일평균 사용시간·주요 기능별 비중 비교]
그런데 취재를 이어가며 제가 정말 흥미로워한 지점은 숫자의 비슷함이 아니라 쓰임의 온도 차였습니다. 서울 마포의 한 노인정에서 만난 일흔의 김 할머니는 제게 카카오톡 단톡방을 보여주며 손주 사진과 아침 인사 이모티콘을 넘겨 보였습니다. “이걸 보면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라던 그분의 표정과, 위챗으로 수도세를 납부하던 왕 할아버지의 표정은 전혀 다른 종류의 안도였습니다. 한쪽은 정서의 다리였고, 다른 쪽은 생존의 인프라였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왜 생겼는지를 오래 고민했습니다. 결국 두 메신저가 놓인 사회 구조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중국은 결제·행정·의료를 하나의 슈퍼앱 안으로 몰아넣는 방식으로 디지털 격차를 메웠고, 텐센트는 2021년부터 ‘관화이모드’라는 큰 글씨·음성 안내 기본값을 심어 노년의 진입 장벽을 낮췄습니다. 반면 한국은 여러 서비스가 각자의 앱으로 흩어져 있는 대신, 카카오톡 하나만은 가족을 잇는 공용 거실로 남겨두었습니다. 2025년 카카오가 큰글씨 전용 서체를 무료로 배포한 것도, 결제보다 ‘읽고 대화하는’ 경험을 우선한 선택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흐름은 단순한 기술 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두 나라가 고령화를 대하는 방식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중국은 2.97억 명에 달하는 60세 이상 인구를 국가 인프라 안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규모의 문제와 마주하고 있고, 한국은 65세 이상이 이미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 상황에서 고립을 막는 것이 더 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위챗 계정에 결제 카드를 연동해주는 ‘효 선물하기’ 기능이나, 카카오가 발달장애인·고령자를 겨냥해 만든 ‘더 쉬운 카톡설명서’는 각기 다른 질문에서 출발한 답이었던 셈입니다.
책을 쓰며 오래 붙잡고 있던 장면 하나가 더 있습니다. 항저우의 한 사구(社區·커뮤니티) 노인대학에서 만난 천 씨 할머니는 매주 화요일마다 스마트폰 강좌를 들으러 온다고 했습니다. “손가락이 굳어서 자꾸 오타가 나요. 그래도 안 배우면 손녀가 보낸 사진을 못 열어봐요”라던 그녀의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중국은 2021년부터 ‘노인 디지털 격차 해소 실시방안’을 통해 전국 사구 단위로 이런 무료 강좌를 의무화했고, 제가 취재한 사구만 해도 월 평균 참여 노인이 40명을 넘었습니다. 한국의 경로당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봤습니다. 서울 성동구의 한 경로당 강사는 “카카오톡 사진첩 정리부터 가르친다”며, 그 첫걸음이 결국 소외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통계로 보면 두 나라의 격차 해소 속도는 비슷하게 가파릅니다. 중국 CNNIC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는 1억 8천만 명을 넘어섰고, 5년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한국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정보격차 실태조사에서 고령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이 2019년 64.3%에서 2024년 79.8%로 뛰었습니다. 저는 이 숫자들을 나란히 놓고 볼 때마다, 격차는 좁혀지고 있지만 그 속도만큼 우리가 곁에서 손을 잡아드리는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쉬워져도, 처음 화면을 함께 들여다봐 줄 사람이 없다면 그 강좌도, 그 앱도 결국 닿지 않는다는 걸 여러 어르신들을 만나며 배웠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은, 이런 강좌 앞에 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이 글을 쓰며 독자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휴대폰 화면을 마지막으로 들여다본 게 언제셨나요. 그 화면 안에서 그분들은 무엇을 하고 계셨을까요. 결제를 하고 계셨을 수도, 손주 사진을 넘겨 보고 계셨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화면은 그분들이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그 통로를 조금 더 자주 함께 들여다보는 것에서, 세대 간의 다리가 다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1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위챗과 카카오톡이라는 두 국민 메신저를 통해 한중 노년의 일상을 비교한 전체 취재기와, 한국 기업이 중국 실버 시장에 진출할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까지 함께 다뤘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위아북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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