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지난달 말 대전에서 열린 KIHA 정기 워크숍은 유난히 후텁지근했습니다. 강의실 에어컨이 시원찮아 다들 부채를 쥐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뒷줄에 앉은 한 참가자가 손을 든 채 내리지 않더군요.
“협회장님, 지난주에 배운 노출 훈련 이야기 말인데요.”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헤드셋을 쓰고 무서운 상황을 견디는 원리는 알겠어요. 그런데 우울감은 무서워서 피하는 마음이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한테 헤드셋이 대체 무슨 소용이죠?”
정확한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답을 서두르는 대신 되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기분이 가라앉을 때 어떻게 하세요?” 그는 잠시 머뭇대다 “누워있죠, 아무것도 안 하고”라고 답했습니다. 그 대답 안에 이미 힌트가 있었습니다.
행동활성화라는 접근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다음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먼저 움직이면 기분이 따라온다는 원리입니다. 문제는 가라앉은 상태에서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나고 산책하는 첫걸음이 유독 무겁다는 데 있죠. 여기서 헤드셋이 하는 일은 그 첫걸음을 안전하게 잘게 쪼개는 것입니다. 가상의 공원을 걷고, 가상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가상의 정원을 가꾸는 여덟 주짜리 프로그램을 옥스퍼드 연구팀이 시도했더니 우울감을 재는 척도 점수가 대기자 집단보다 세 배 넘게 더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몸을 빌려주는 순간워크숍의 다른 참가자가 이어 물었습니다. “그럼 스스로를 못 견디게 미워하는 사람한테는요? 산책만으로는 안 될 것 같은데요.” 이번엔 스탠퍼드 쪽 실험 하나를 소개했습니다. 헤드셋을 쓴 사람이 먼저 거울 속 자기 아바타와 손짓을 맞춰보며 그 몸이 자기 몸이라는 감각을 익힙니다. 그다음 놀랍게도 자기 몸에서 걸어 나와, 옆에서 지켜보는 다른 사람의 몸으로 옮겨갑니다. 그 낯선 시점에 서면 슬퍼하고 있는 원래의 자신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울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가 말을 건넵니다. “힘들었지. 너는 혼자가 아니야.” 마지막엔 다시 원래 몸으로 돌아와, 방금 자신이 건넸던 그 말을 이번엔 받는 쪽에서 듣습니다.
“그게 정말 마음을 움직여요?” 누군가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습니다. 15분 남짓한 한 번의 체험만으로도 스스로에 대한 비난이 눈에 띄게 줄었고, 4주 뒤 조사에서도 그 변화가 유지됐다는 후속 관찰이 있습니다. 왜일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남에게는 쉽게 건네는 다정한 말을 자기 자신에게는 좀처럼 하지 못합니다. VR은 그 말을 ‘남의 자리에서 나에게’ 실제로 해보게 만드는 우회로인 셈입니다.
두려움에서 근거로워크숍 끝 무렵, 가장 조심스러운 질문이 나왔습니다. “현실 감각 자체가 흔들리는 조현병 같은 경우엔 오히려 위험하지 않을까요? 가상현실이 망상을 더 키울 수도 있잖아요.” 저 역시 처음엔 같은 걱정을 했습니다. 2015년 이전 학계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하지만 이후 쌓인 연구들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표정을 읽고 타인의 의도를 헤아리는 훈련을 가상의 면접 상황, 갈등 상황 속에서 반복하게 했더니 사회적 위축이 줄었다는 보고가 이어졌습니다. 올해 학술지 「Current Psychology」에 실린 리뷰 역시, 가상현실을 보조적으로 활용한 인지·사회 기능 훈련이 만족도는 높고 어지럼 같은 부작용은 오히려 적다는 쪽으로 결론을 모으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짚었습니다. 헤드셋 하나가 오랜 어려움을 대신 짊어져 주지는 않습니다. 전문가의 동행과 생활 습관의 뒷받침 없이 기술만 앞세우면 오히려 공허해집니다. 그날 첫 질문을 던졌던 참가자는 워크숍이 끝난 뒤 이렇게 말하더군요. “무서워서가 아니라 지쳐서 피하고 있었다는 걸, 오늘 처음 언어로 정리한 것 같아요.” 저는 그 한마디를 오래 붙들고 대전을 떠나왔습니다. 다음 만남에서는 또 다른 질문 하나를 들고 이 자리에 서보려 합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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