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날 저녁 6시, 베이징 톈탄공원 입구에 서서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한 줄에 맞춰 족히 백 명은 되어 보이는 어머니들이 동시에 팔을 뻗고 발을 굴렀습니다. 취재 수첩을 꺼내려다 말고, 저는 그냥 그 자리에 서서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제가 「실버 브릿지」 시리즈를 쓰며 가장 자주 떠올리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이 저녁의 광장입니다.
제 책 제9장에는 이런 문장을 남겼습니다. “광장 한복판에서 수십 명이 군무를 펼치는 중국, 좁은 부스 안에서 마이크를 돌려 잡는 한국 — 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도시 공간·세대 구조·실버경제의 설계도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날 톈탄공원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제게 “여기 나오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오래도록 곱씹었습니다. 은퇴 이후 사회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리에, 광장의 군무가 새로운 얼굴을 돌려주고 있었던 겁니다.
숫자로 보면 이 풍경의 크기가 더 선명해집니다. 신화통신과 텐센트의 합동 조사는 중국 전국의 광장춤 정기 참여 인구를 약 1억 명으로 추산했고, 그 대부분이 50~70세 여성이었습니다. 국가통계국 발표로는 2024년 말 기준 중국의 60세 이상 인구가 처음으로 3억 명을 돌파했고, 65세 이상은 2.2억 명, 전체 인구의 15.6%에 달했습니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1~9월 사이 노래방 691곳이 문을 닫고 243곳만 새로 생겼습니다. 정통 노래방 업계는 분명 위축되고 있었지만, 그 빈자리를 경로당 노래방 기기와 시니어 노래교실이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취재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종로의 한 코인노래방을 찾았을 때, 저는 전혀 다른 결의 온기를 느꼈습니다. 한 어르신이 트로트 한 곡을 예약해 놓고 순서를 기다리며 옆 사람과 나지막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톈탄공원의 개방적이고 집단적인 몸짓과 달리, 이곳은 6인 룸이나 1~2인 부스라는 작은 단위 안에서 은밀하게 마음을 나누는 방식이었습니다. 중국의 어머니들이 광장이라는 무대에서 자신을 드러냈다면, 한국의 어르신들은 부스라는 작은 방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함께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는 마음이, 도시가 내어준 공간의 모양에 따라 이렇게 다른 풍경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저는 이 대비를 취재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광장춤과 노래방은 취미의 차이가 아니라 질문의 답이라는 것을요. 중국의 도시계획은 단위와 사구마다 광장을 반드시 포함시켰습니다. 그래서 저녁이 되면 그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머니 세대의 무도장으로 바뀝니다. 반면 한국은 1990년대 이후 도심 공공 공간이 카페와 상가로 빠르게 사유화되면서, 시니어가 모일 수 있는 곳이 실내 노래방과 경로당, 복지관으로 좁혀졌습니다. 제가 톈탄공원과 종로 노래방에서 각각 느낀 온도차는, 결국 두 사회가 노년에게 어떤 공간을 남겨두었는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 흐름은 인구 구조와도 맞물려 있습니다. 통계청 2024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24만 명으로 전체의 19.2%에 이르렀고, 보건복지부 자료로는 전국 경로당이 6만 8천여 개소에 달합니다. 이 경로당들에 스마트 노래방 기기와 AI 반주기가 하나둘 들어서는 모습을, 저는 여러 지역을 다니며 직접 확인했습니다. 중국은 광장춤을 국가체육총국의 ‘건강 중국 2030’ 정책에 편입시켜 전국민 건강 전략의 한 축으로 삼았습니다. 두 나라 모두 노년 인구가 사회 구조의 중심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오락문화가 정책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챕터를 쓰면서 광장춤 뒤에 숨은 조직의 정교함에도 놀랐습니다. 제9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지도자 한 명이 스무 명 남짓을 이끌고, 그 지도자들을 다시 지역 총괄이 관리하는 촘촘한 위계가 전국 300만 명의 인솔자망을 떠받치고 있다.” 이 자발적 조직이 糖豆 같은 앱을 만나면서, 저는 중국의 노년 문화가 이미 하나의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이런 촘촘한 인솔 구조 없이, 개별 복지관과 경로당이 각자 프로그램을 꾸리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여가활동조사를 보면 한국 노년층이 가장 원하는 여가는 ‘함께 노래하고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었지만, 실제 참여율은 20%대에 머물렀습니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밝힌 3억 명의 60세 이상 인구, 그리고 그중 1억 명이 매일 저녁 광장으로 나온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이 격차는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의 문제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는, 저녁마다 마음 놓고 나가 노래하고 몸을 움직일 자리가 있습니까.
제가 이 챕터를 쓰며 독자 여러분께 진짜로 묻고 싶었던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동네에는 노년이 저녁마다 나가서 몸을 움직이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까. 톈탄공원의 어머니가 “여기 나오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진다”고 했던 그 한마디를, 저는 우리 사회가 시니어에게 얼마나 자주 돌려주고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거창한 정책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동네 경로당 한 켠에 스피커 하나, 마이크 하나가 놓이는 것부터가 그 대답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9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광장춤 인솔자 300만 명의 위계 구조, 糖豆·99广场舞 같은 앱이 만들어낸 5천만 명의 디지털 생태계, 그리고 한국 기업이 이 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구체적인 기회들까지, 제가 현장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가감 없이 풀어놓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위아북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에서 더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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