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지난주 화요일, KIHA 강의실 한쪽 구석에 헤드셋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시연용으로 빌려온 것이었는데, 일흔을 넘긴 회원 한 분이 그 앞에 한참 서 계셨습니다. “이게 그렇게 좋다면서요, 우울한 마음도 그걸로 좋아진다면서요.” 저는 그 말에 조심스럽게 단어를 바로잡아 드렸습니다. 좋아지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는 접근법 중 하나라고요. 그리고 가격표를 보여드렸습니다. 최소 40만 원, 좋은 사양이면 5백만 원 가까이 되는 장비였습니다. 그분은 헤드셋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그럼 저 같은 사람은 그냥 안 되는 거네요.”
그 웃음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상현실 치유는 분명 쓸모가 있습니다. 회피해온 상황을 안전하게 다시 마주하게 하고, 자기 자신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훈련을 돕는다는 연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 앞에 아무나 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장비 값, 전용 공간, 다루는 법을 익히는 시간—이 세 가지 앞에서 고령층과 지방 거주자, 형편이 어려운 분들은 자주 밀려납니다.
실제로 의료용 가상현실 시장은 올해 31억 달러 규모에서 2034년 157억 달러까지 커진다는 예측이 나옵니다. 연평균 22퍼센트가 넘는 성장세입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이 기술을 건강보험으로 받쳐줄 급여 체계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시장은 자라는데, 문턱은 그대로인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회원분께 다른 제안을 드렸습니다. 헤드셋이 하는 일 중 상당 부분은, 사실 종이와 손목과 목소리만으로도 흉내 낼 수 있다고요.
오늘 저녁, 헤드셋 없이 시작하는 다섯 걸음첫째, 요즘 자꾸 피해온 일 하나를 종이에 적어보세요. 전화 한 통, 미뤄둔 만남, 잠깐 걷기 싫었던 그 산책도 좋습니다. 가상 환경이 대신해주던 “안전하게 다시 마주하기”를, 오늘은 목록으로 시작하는 겁니다.
둘째, 거울 앞에 1분만 서서 자신에게 소리 내어 말을 걸어보세요. “오늘 애썼다”처럼 짧은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낯설고 어색해도 괜찮습니다. 그 어색함이 지나가는 자리에 다정함이 남습니다.
셋째, 마음속에서 반복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짧은 편지를 써보세요. 답장까지 스스로 써보는 겁니다. 대화의 형식을 빌리면, 통제할 수 없던 것이 손에 잡히는 크기로 줄어듭니다.
넷째, 하루 중 5분, 손목 안쪽에 가만히 손을 얹고 맥박을 세어보세요. 숫자를 정확히 맞히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몸이 지금 어떤 속도로 뛰고 있는지, 그저 알아차리는 연습입니다.
다섯째, 이 네 가지를 일주일치 달력에 적어 넣으세요. 하루 10분이면 됩니다. 장비도, 예약도, 전용 공간도 필요 없습니다.
비싼 도구가 아니라 반복이 하는 일가상현실 치유 연구들이 실제로 확인한 것은 기술 자체의 신비가 아니라, 회피하던 것을 안전한 만큼씩 마주하고, 자신에게 건네는 말투를 바꾸고, 낯선 목소리와 대화를 시도하는 반복의 힘이었습니다. 헤드셋은 그 반복을 도와주는 도구 중 하나일 뿐, 유일한 통로는 아닙니다. 물론 한계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정교하게 설계된 몰입 환경만큼의 강도를 내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누구나, 오늘 밤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값을 지닙니다.
그 회원분은 다음 모임에 손목시계를 차고 오셨습니다. 비싼 것도,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맥박을 짚어보는 습관 하나가 생겼을 뿐입니다. 다음 주에는 그 손목 위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지, 조금 더 들여다보려 합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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