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1926년 8월 24일 – 발렌티노의 관 앞에 뉴욕이 뒤집히던 날, 경성 극장가는 검열료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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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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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판 · 1926년 8월 24일 화요일

발렌티노의 관 앞에 뉴욕이 뒤집히던 날, 경성 극장가는 검열료에 떨었다

10:10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0시 10분의 시간처서가 지나고 꼭 하루, 경성 아침 하늘은 어제보다 한 뼘 더 높아졌다. 그러나 종로 거리의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지난 8월 1일부터 시행된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조선총독부령 제59호)의 검열료 고지서가 극장 사무실마다 쌓여가고 있었다. 같은 날 태평양 건너 뉴욕에서는 배우 한 사람의 관 앞으로 인파가 몰려들어 거리가 아수라장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보를 타고 넘어올 참이었다. 조용해 보이는 여름의 끝자락, 세계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술렁이고 있었다.

그날의 경성단성사와 조선극장, 우미관까지 북촌의 세 극장가는 요 며칠 뒤숭숭했다. 7월 5일 공포되어 이달 초부터 시행에 들어간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은 상영 필름 한 자 한 자를 총독부가 다시 검열하며 수수료를 새로 매기는 내용이었다. 검열료가 필름 길이에 따라 매겨지다 보니, 상설관 주인들과 배급업자들 사이에서는 “이러다 극장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는 말이 오갔다고 전해진다. 나운규가 다음 달 개봉을 준비하던 신작을 비롯해 조선인 극장들이 서양 영화에 조선말 변사 해설을 입혀 걸던 관행에도 이 검열료는 고스란히 얹혔다.

거리 반대편에서는 조금 다른 열기가 있었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한 배재·중앙·휘문·경신 네 학교의 야구연맹전, 이른바 4구락부 리그전이 한여름 내내 이어지고 있었다. 처서를 넘긴 오후에도 운동장에는 교복 입은 학생들과 이를 지켜보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검열료 고지서로 어수선한 극장가와, 공을 쫓아 뛰는 학생들의 함성이 한 도시 안에 나란히 있었다.

경성과 한반도극장가의 술렁임은 경성만의 일이 아니었다. 총독부령으로 정해진 검열 규칙은 조선 전역의 상설관에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어서, 지방 흥행업자들 사이에서도 볼멘소리가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한편 두만강 건너 간도에서는 조선 농민들의 발걸음이 그해에도 이어지고 있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논밭을 잃은 이들이 해마다 강을 건넜고, 이 무렵 간도 지역 조선인 호수는 5만 2천여 호로 그 땅에 사는 중국인 호수를 크게 웃돌았으며 농토의 절반 이상을 조선인이 부치고 있었다. 경성의 극장 문 앞과 간도의 밭두렁은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총독부의 손길이 어디에나 뻗어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하늘 아래였다.

그날의 세계뉴욕은 이날 하루 종일 소란스러웠다. 전날 세상을 뜬 은막의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의 관이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에 안치되자, 조문객이라 불러야 할지 구경꾼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인파 수만 명이 몰려들어 유리창을 깨고 서로를 밀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마경관 백여 명과 예비경찰까지 동원되고서야 거리는 겨우 정돈되었다. 절망에 빠진 여성 팬들의 자살 시도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중국 남쪽에서는 전혀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광둥에서 북쪽으로 진군하던 국민혁명군이 22일 웨저우의 양쯔강 항구를 점령하면서 후난성 전역이 국민당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식이었다. 장제스가 이끄는 이 북벌군은 이제 후베이성의 우창과 한커우를 향해 다시 북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뉴욕의 관 하나를 둘러싼 소동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군대의 행진이 같은 하루 안에 나란히 신문 전보란을 채웠다.

경성 24시새벽녘, 종로의 극장 지배인들은 전날 밤 늦게까지 검열료 계산서를 붙들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나절이 되면 다방과 카페 골목에는 대학생들과 문사(文士)들이 모여 앉아 신문을 펼쳐 들었다. 낮 동안 운동장에서는 4구락부 야구전을 보러 나온 이들의 함성이 담을 넘었다. 해거름이면 종로통 상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고, 극장 앞에는 그래도 저녁 표를 사려는 줄이 늘어섰다 — 검열료가 아무리 무거워도, 스크린 앞에 앉고 싶은 마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법정과 관청 근처에서는 여전히 크고 작은 취조와 심문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짧은 단신도 그날 지면 한구석을 채웠다.

100년의 거울비교 항목 1926년 2026년영화 상영 절차총독부 검열 통과 + 수수료 납부 필수영상물등급위원회 등급 분류, 표현의 자유 폭넓게 보장극장 문화변사의 육성 해설로 서양 영화 감상다국어 자막·더빙, 스트리밍 동시 개봉스타의 죽음과 대중바다 건너 소식이 전보로 며칠 늦게 도착실시간 속보와 온라인 추모 물결검열료 고지서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극장 주인의 마음과, 좋아하던 배우의 마지막을 보려고 유리창까지 깨며 몰려들던 뉴욕 팬들의 마음은 100년의 시차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시절 조선의 스크린 앞에는 총독부의 도장이 하나 더 필요했을 뿐이다.

내일을 기다리며내일 아침 10시 10분, 경성의 아침 신문은 훨씬 더 날 선 이야기를 전하게 된다. 옥중에 갇힌 두 사람을 찍은 사진 한 장이 처음으로 지면에 오르며, 판사석까지 뒤흔드는 파문이 시작될 참이었다. 내일,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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