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4권 · 제15장 · 손녀의 카메라 앞에 선 할머니, 저는 거기서 다른 노년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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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저는 지난해 서울의 한 촬영 현장에서 손녀가 할머니의 얼굴에 조명을 맞추는 장면을 오래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렌즈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웃었고, 손녀는 그 옆에서 대본도 없이 “할머니, 오늘은 무슨 영상 찍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짧은 질문이 제 책 「디지털 실버」 15장의 첫 문장이 된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78세 박막례 할머니의 하루가 그 질문으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는 노년을 취재하는 제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독자 115만 명, 손녀 PD와 함께 8년째 채널을 운영해 온 박막례 할머니는 이제 식품과 화장품 브랜드를 가진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쓰면서 제가 그동안 만나온 시니어들과의 인터뷰를 떠올렸습니다. 대부분은 “이 나이에 뭘 새로 배우겠느냐”는 말로 대화를 시작했는데, 박막례 할머니의 궤적은 정반대였습니다. 치매 검사를 계기로 손녀가 촬영해 올린 여행 영상이 뜻밖의 반응을 얻으며 시작된 채널이, 8년 뒤에는 스스로 브랜드를 가진 사업으로 자라 있었습니다. 73세 밀라논나 장명숙 선생님이 남긴 말도 제 취재 노트에 오래 남아 있습니다. “카메라가 저를 찍는 게 아니라, 제가 카메라로 세상에 말을 거는 거예요. 73세에야 비로소 ‘내 목소리’를 갖게 됐죠.” 저는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노년의 발화라는 것이 얼마나 늦게, 그러나 얼마나 또렷하게 도착할 수 있는지를 생각합니다.

숫자로 보면 이 변화는 결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닙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5」에 따르면 한국의 60대 이상 유튜브 이용률은 53%로, 조사 대상 48개국 평균인 26%의 두 배에 이릅니다. 60대의 82.6%, 70대의 93.1%가 뉴스와 시사 정보를 유튜브로 접한다는 수치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제가 만나온 어르신들의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 화면 안에서 그들은 더 이상 정보를 기다리는 쪽이 아니라, 정보를 찾아 나서고 때로는 직접 만들어내는 쪽에 서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 중국 산둥에서는 80세 톈 할머니(田姥姥)가 3,454만 명이 구독하는 더우인 채널에서 시골 밥상을 차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취재차 중국 쪽 자료를 살피면서, 이 숫자가 한국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의 2025년 6월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는 1억 6,100만 명, 더우인의 실버 월간활성이용자는 2억 1,400만 명을 넘습니다. 그런데 톈 할머니의 채널은 박막례 할머니의 채널과 달리, 자녀와 손자녀가 기획·촬영·편집·커머스를 전담하는 가족 사업 구조로 운영됩니다. 화면 속에서 할머니가 만두를 빚으면, 화면 옆 구매 링크가 같은 밀가루와 간장을 팔아 월 매출이 수천만 위안에 이른다는 대목을 읽으며, 저는 이것이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농촌 청년의 일자리와 지역 농산물 유통까지 떠받치는 구조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 장을 쓰며 가장 오래 붙들고 있던 질문은, 왜 두 나라의 노년이 거의 같은 시기에 카메라 앞으로 걸어 나왔는가였습니다. 한국의 시니어들에게 그것은 표현하고 싶은 자아의 문제였습니다. 박막례 할머니와 밀라논나 선생님의 콘텐츠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오락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내가 본 세계’를 기록하는 일종의 디지털 자서전이라는 점입니다. 반면 중국의 실버 크리에이터 현상은 제가 보기에 더 경제적입니다. 카메라 앞의 할머니 한 사람 뒤에, 그 콘텐츠로 생계를 잇는 젊은 가족 전체가 서 있는 구조였습니다.

이 차이는 정책과 인구 구조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국은 2025년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 명, 20.3%를 넘기며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중국은 60세 이상 인구가 이미 3억 명, 23%를 돌파했습니다. 두 나라 모두 ‘노년을 어떻게 부양할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과 함께, ‘노년이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새로운 질문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두 질문이 결코 상충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카메라 앞에 선 노년의 모습이, 부양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세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장을 마무리하며 제 자신에게도 질문을 던졌습니다. 저는 취재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얼마나 자주 ‘돌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았을까,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박막례 할머니의 주름과 사투리, 톈 할머니의 소박한 시골 밥상은 꾸며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신뢰를 얻었습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께도 묻고 싶습니다. 우리 주변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 스마트폰 화면 뒤에서 무엇을 보고 계신지, 그리고 화면 앞에 서고 싶어 하시지는 않는지 한 번쯤 여쭤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15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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