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창밖은 눅눅한 초록빛이었고, 상담실 안은 제습기 돌아가는 소리만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마흔 초반의 회원 한 분이 손목을 들어 보이며 말을 꺼냈습니다. “이거 자꾸 빨간불이 떠요. 스트레스 지수가 87이라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분의 손목시계 화면에는 붉은 숫자가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정작 본인은 “그렇게 힘든 하루는 아니었는데”라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저는 그 순간이 흥미로웠습니다.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정작 그 몸의 주인은 아직 알아채지 못한 상태였으니까요. 우리는 보통 “오늘 기분 어때요”라는 질문에 “그냥 그래요” 정도로 답하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심장은 그렇게 대충 답하지 않습니다. 박동과 박동 사이의 미세한 간격, 그 리듬의 흔들림 속에 훨씬 정직한 답이 들어 있습니다.
몸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그 회원분의 손목시계가 측정하고 있던 것은 심박변이도, 흔히 HRV라 부르는 지표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건강한 심장은 메트로놈처럼 똑같은 간격으로 뛰지 않습니다. 어떤 박동은 0.95초 만에, 다음 박동은 1.05초 만에 옵니다. 이 미세한 흔들림이 클수록 오히려 몸이 유연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뜻이고, 흔들림이 사라지고 리듬이 뻣뻣해질수록 자율신경계가 한쪽으로 굳어 있다는 신호입니다.
자율신경계는 늘 두 개의 페달을 함께 쥐고 있습니다. 위협 앞에서 심장을 빠르게 뛰게 만드는 교감신경, 그리고 식사 후 소화를 돕고 근육을 풀어주는 부교감신경. 문제는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대한스트레스학회 조사에서 한국인의 스트레스 지수가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축에 속한다고 나온 것도, 어쩌면 이 페달을 오래 밟고 있으면서도 그걸 “정상”이라 여기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날 저는 그분께 화면 속 숫자를 없애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숨을 들이쉬는 데 4초, 내쉬는 데 6초.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는 동안 화면의 붉은 숫자가 천천히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어, 내려가네요”라는 그분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안도가 묻어 있었습니다.
초록불이 켜지기까지이 원리를 바이오피드백이라 부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몸의 언어를 화면 위에 띄워, 스스로 그 언어를 바꾸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훈련을 받으려면 전문 장비를 갖춘 곳을 찾아가야 했지만, 요즘은 손목 위에서 매일 확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실제로 한국 성인 가운데 3분의 1, 30대로 좁히면 절반 이상이 이미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다고 하니, 이제는 손목이 하나의 작은 상담실이 된 셈입니다. 최근 자료를 보면 HRV 기반 바이오피드백 앱 시장도 매년 20% 넘게 커지고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이 흐름을 숫자보다 “몸의 언어를 읽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치유론 © 송정숙 칼럼니스트
다만 저는 이 숫자를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는 말자고 늘 말씀드립니다. HRV는 사람마다 타고난 폭이 다릅니다. 옆 사람의 숫자와 비교하기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나란히 놓고 보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그 회원분도 몇 주 뒤에는 화면을 보지 않고도 자신의 호흡이 언제 얕아지는지 스스로 알아채기 시작했습니다. 숫자는 처음 몇 걸음의 안내자였을 뿐, 결국 걸어간 것은 그분 자신이었습니다.
상담실을 나서던 그분이 문 앞에서 잠깐 멈춰 서더니 손목시계를 한 번 더 들여다보고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이 숫자가 저를 혼내는 게 아니라, 저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말을 오래 붙잡고 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두려움이 아니라 대화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이번 이야기에서 제가 나누고 싶었던 전부입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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