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명작선-9] 견디는 힘 끝에 ‘서로’가 있다

Photo of author

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거대한 바위 위에 소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흙이 넉넉해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줄기를 세웠고, 거친 바위와 한 몸처럼 붙어 살아간다. 박미진 시인은 그 모습에서 오래 버티는 생명의 조건을 읽어 세 문장으로 압축했다.

[코리안투데이] 박미진 시인의 「장수 비결」  © 장시백 기자

“견딜 것제 자리를 지킬 것서로를 바라볼 것”

첫 문장 ‘견딜 것’은 사진 속 소나무와 가장 쉽게 연결된다. 바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에게 삶은 처음부터 만만하지 않았을 것이다. 햇빛과 비, 바람을 받아내며 지금의 모습을 이루어 왔을 것이다. 시인은 그 시간을 장황하게 풀지 않고 ‘견딜 것’이라는 한마디로 잘라낸다. 짧지만 힘이 세다.

이어지는 “제 자리를 지킬 것”에서는 견딤의 의미가 달라진다. 무조건 버티라는 주문으로만 읽히지 않는다. 자신이 뿌리내린 곳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살아낼 힘을 말한다. 바위와 나무가 맞붙어 있는 사진은 이 문장을 설득력 있게 받쳐 준다. 쉽게 옮겨 갈 수 없는 자리이기에 ‘지킨다’는 말에도 무게가 생긴다.

마지막 “서로를 바라볼 것”에 이르면 작품은 한 존재의 생존에서 관계의 문제로 폭을 넓힌다. 견디는 힘도, 자리를 지키는 힘도 혼자만의 의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 서로의 존재를 살피며 살아가는 일이 삶을 이어 가는 또 하나의 조건으로 들어온다. 앞의 두 문장이 ‘나’를 세웠다면 마지막 문장은 ‘우리’를 불러낸다.

제목 「장수 비결」은 세 문장을 생활의 지혜처럼 읽게 한다. 건강법이나 특별한 비방을 기대하게 만드는 제목 뒤에 등장하는 것은 ‘견딜 것, 지킬 것, 바라볼 것’이라는 단순한 동사들이다. 그 간결함 때문에 제목에는 은근한 유머도 생긴다. 장수의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시인은 바위 위 소나무의 생을 답으로 내놓은 셈이다.

사진과 시의 연결도 군더더기가 없다. 바위에 붙어 살아가는 소나무의 모습에서 ‘견딤’과 ‘자리’를 끌어내고,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서로’라는 관계의 언어를 붙였다. 사진을 그대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시가 사진을 벗어나 따로 놀지 않는다.

세 문장은 갈수록 시야가 넓어진다. 견디는 것은 나의 일이고, 자리를 지키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타인이 들어온다. 박미진 시인의 「장수 비결」이 말하는 생의 비결은 결국 혼자 버티는 기술에서 끝나지 않는다. 살아남는 힘의 한쪽에는 늘 ‘서로’가 있다.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WIA Code — 이 기사 링크
인쇄용 ·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확인
기사 바로 열기 ·
⇓ PNG 다운로드
WIA Family · 88개 언어 무료 학습 게임 — WIAvers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