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명작선-10] 가족을 등에 지고 살아온 붉은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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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넓은 갑판 곳곳에 페인트가 벗겨지고 붉은 녹이 번져 있다. 바닷물과 바람을 맞으며 수없이 오갔을 배의 몸에는 세월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정홍근 시인은 그 붉은 자국에서 낡음보다 한 생을 다 써 온 흔적을 바라본다.

[코리안투데이] 정홍근 시인의 「녹」  © 장시백 기자

“뜨겁게 불태운 것들은모두 붉게 빛난다”

녹은 보통 쇠가 상하고 있다는 증거로 여긴다. 벗겨내고 다시 칠해야 할 흔적이다. 하지만 시인은 그 붉은색에 ‘빛난다’는 말을 붙인다. 오래 쓰여 닳고 상한 자리를 초라함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무엇인가를 위해 제 몸을 아끼지 않았던 시간이 그 붉은빛 속에 들어 있다.

“껍질 벗겨진 어깨속살이 다시 거죽이 되어등짐 지고 나선다”

여기서 배는 사람의 몸을 얻는다. 벗겨진 철판은 ‘어깨’가 되고, 드러난 안쪽은 ‘속살’이 된다. 그런데 상처가 다 아물었다는 말은 없다. 드러난 속살이 그대로 거죽이 되고, 그 위에 다시 짐을 올린다.

이 대목을 읽으면 한 사람의 등이 겹쳐진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하루 일을 마치고도 다음 날이면 다시 일터로 나갔던 아버지다. 어깨가 쑤셔도 쉬지 못했고, 손바닥이 갈라져도 다시 연장을 잡았다. 아픈 곳이 나을 때까지 기다릴 형편도 없었다. 상처 위에 또 하루가 얹히고, 그 하루 위에 가족의 끼니와 자식들의 학비가 얹혔다.

그래서 “등짐 지고 나선다”는 마지막 행이 아프다. 짐의 무게보다 그 짐을 다시 져야 한다는 사실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아버지에게 삶은 몸이 회복된 뒤 다시 시작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직 아픈 어깨로 또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었다.

제목 「녹」도 그런 삶과 닮아 있다. 쇠가 수없이 바람과 물을 맞으며 붉게 변하듯, 사람의 몸에도 살아온 시간이 남는다. 굳은살이 박이고, 허리가 굽고, 주름이 깊어진다. 자식들은 그 흔적을 늙음이라고 생각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은 한 가족을 떠받친 시간의 자국이기도 하다.

사진 속 붉은 갑판과 시 속 ‘어깨·속살·거죽·등짐’은 자연스럽게 한 몸을 이룬다. 시인은 배를 사람처럼 꾸며 놓는 데서 멈추지 않고, 닳은 몸으로도 다시 움직여야 하는 삶을 끌어낸다. 그래서 사진 속 녹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 순간 낡은 쇠보다 익숙한 한 사람의 등이 보인다.

아버지는 자신의 상처가 다 아물기를 기다리며 살지 못했다. 벗겨진 곳에 또 하루가 덮이고, 그 위에 다시 가족이라는 짐을 올렸다. 「녹」의 붉은빛은 그렇게 살아낸 사람의 몸에 새겨진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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