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4권 · 제19장 · 청두 차관과 전주 돌담길, 두 개의 슬로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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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지난가을, 저는 청두 인민공원 안쪽 학명차관(鶴鳴茶館)의 죽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자리는 이미 절반 넘게 어르신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자스민차 한 주전자를 시키고 옆자리 어르신께 말을 건넸더니, 그분은 웃으며 손에 든 찻잔을 살짝 들어 보이셨습니다. 그 몸짓 하나가 이번 챕터를 쓰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가 만난 그 단골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찻집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동네 사랑방이자 작은 사회입니다. 매일 와서 친구 얼굴을 보고, 날씨를 이야기하고, 가끔은 그저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곱씹지요.” 저는 그 말을 받아 적으면서, 이분이 오늘 아침 9시에 들어와 저녁 5시까지 이 자리를 지킬 거라는 사실을 함께 들었습니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때우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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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두로 떠나기 전 자료를 정리하며 숫자를 다시 짚어봤습니다. 2024년 말 기준 청두의 호적 60세 이상 인구는 324만 2,400명으로 전체의 20.63%, 사천성 평균(20.04%)과 중국 전체(19.80%)를 모두 웃도는 수치였습니다. 70세 이상이 이미 노인 인구의 53.5%를 차지한다는 대목에서는 잠시 멈칫했습니다. 사천성이 중국 내 인구 유출 1위 권역이다 보니, 청년은 떠나고 어르신만 남는 구조가 통계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두 시내에만 약 2만 곳의 차관이 있다는 것도, 그 자리에 앉아보고서야 숫자가 아니라 풍경으로 이해가 됐습니다.

청두에서 돌아와 며칠 뒤 저는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 돌담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풍남문에서 오목대까지 이어지는 1.5km 구간을 한복 차림의 노부부가 손에 생강차를 든 채 30분 넘게 걷고 계셨습니다. 청두의 어르신이 한자리에 몸을 깊이 묻고 하루를 보냈다면, 이 부부는 걷고 쉬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한옥마을 방문객 중 60대 이상 비중은 28.7%로, 5년 전 19.4%보다 9.3%포인트나 늘었다고 합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 한 잔이 이분들의 정해진 코스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두 도시를 나란히 두고 나서야 저는 ‘슬로라이프’라는 같은 이름 아래 얼마나 다른 결이 숨어 있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청두는 한자리에 머무는 슬로였고, 전주는 걸으며 흐르는 슬로였습니다. 청두 차관의 평균 체류 시간이 4시간을 넘고, 전주 한옥마을 60대 이상 방문객의 평균 체류 시간도 5.2시간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서, 저는 이 두 도시가 어르신에게 공통으로 내어주는 것이 결국 ‘충분히 긴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르게 회전시키는 소비가 아니라, 오래 머무르게 두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풍경 뒤에는 두 나라가 함께 마주한 인구 시계가 있습니다. 전주는 2025년 7월 인구 63만 명 선이 무너지면서 65세 이상 비율이 22%대를 넘어섰고, 특히 한옥마을이 자리한 풍남동 일대는 이미 30%를 훌쩍 넘는 초고령 동입니다. 청두 역시 화려한 메가시티의 외관 뒤로 고령화가 사천성 평균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정책이 아무리 촘촘해도 결국 그 정책이 닿는 자리는 학명차관의 죽의자 하나, 경기전 돌담길의 걸음 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저는 이번 취재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책을 쓰며 다시 펼쳐본 취재 노트에는 학명차관 어르신의 다른 말씀도 남아 있었습니다. “여기 앉아 있으면 시간이 나를 재촉하지 않아요. 젊을 때는 시간에 쫓겨 살았는데, 이제는 시간이 나를 기다려줍니다.” 전주에서 만난 노부부 중 할머니께서 하신 말씀도 제 수첩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하루에 이 골목을 두 바퀴만 돌아도 다리도 마음도 개운해져요. 여기 오면 우리가 아직 걸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아요.” 두 말씀을 나란히 옮겨 적으며, 저는 ‘느림’이 결국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로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중국 국가통계국은 같은 해 중국 전체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천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습니다. 두 나라 모두 노년 인구 증가 속도가 세계 평균을 앞지르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정책의 결은 다릅니다. 한국은 노인 돌봄과 의료에 방점을 찍어온 반면, 중국은 최근 몇 해 사이 ‘실버 경제(銀髮經濟)’라는 이름으로 소비와 여가, 지역 상권을 노년 정책의 중심에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차이가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각자의 도시가 어르신에게 무엇을 먼저 물었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동네는 어르신에게 “건강하십니까”를 먼저 묻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 하루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를 먼저 묻고 있습니까.

독자 여러분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부모님, 혹은 우리 자신의 노년을 그릴 때 그 시간은 얼마나 ‘느리게’ 설계되어 있을까요. 학명차관의 어르신처럼 매일 같은 자리에서 같은 얼굴을 마주하는 관계, 혹은 경기전 돌담길의 부부처럼 매일 조금씩 다른 풍경을 걷는 관계, 둘 중 우리 동네에는 어떤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지 한번 둘러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작은 확인이 슬로 실버 시대를 준비하는 첫걸음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19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청두의 차관 문화와 전주의 한옥 골목이 어르신 소비와 지역 산업에 어떤 기회를 열어주는지, 그리고 한국 기업이 이 시장에 접근할 때 유의해야 할 지점까지 함께 정리해두었으니 관심 있는 독자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도서 상세 정보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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