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저는 불국사 돌계단 앞에서 한 어르신 무리와 나란히 걸은 적이 있습니다. 칠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여섯 분이 손을 맞잡고, 한 계단씩 천천히 오르며 서로의 속도를 맞추고 계셨습니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고, 누구도 뒤처지지 않았습니다. 그 풍경을 보며 저는 문득 몇 달 전 시안의 대당불야성에서 목격했던 또 다른 노년의 풍경을 떠올렸습니다. 조명이 쏟아지는 1.5km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 속에서, 60~70대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들이 당나라 궁중 무용 공연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박수를 치던 그 밤이었습니다. 같은 노년, 다른 속도. 이것이 이번 장을 쓰게 된 계기였습니다.

제가 만난 경주의 한 문화해설사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은 황리단길보다 이쪽을 훨씬 좋아하세요. 빠르게 걷지 않아도 되고, 사진을 찍지 않아도 뭔가를 얻어가시거든요.” 실제로 경주를 찾는 40대 이상 방문객은 역사·문화 코스를 2030세대보다 두 배 이상 선호한다고 합니다. 불국사는 2024년 20.2%, 2025년 19.9%로 여전히 입장객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숫자 뒤에는 제가 목격한 것과 같은 ‘천천히 걷는’ 어르신들의 발걸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안에서 만난 한 가이드는 정반대의 말을 했습니다. “중국 시니어들은 짧게 여러 번보다, 한 번에 3박 4일 몰입해서 보는 걸 좋아해요. 병마용 하나를 보러 왔으면 제대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시죠.”
숫자로 보면 두 도시의 체급 차이는 아찔할 정도입니다. 2024년 시안은 3억 600만 명의 방문객과 3,760억 위안, 우리 돈으로 약 70조 원에 이르는 관광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해 경주는 외국인 방문객 117만 9,094명으로 사상 처음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중국 문화여유부 자료에 따르면 60세 이상 시니어 관광객이 전체 국내 여행객의 약 30%에 달하고, 2025년 말 중국의 시니어 관광 시장 규모는 1조 1,400억 위안, 우리 돈으로 213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합니다. 경주를 찾은 외국인 중 중국 국적이 20만 5,941명으로 17.5%를 차지해 1위였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두 도시는 규모는 다르지만, ‘시니어가 핵심 고객’이라는 점에서는 이미 같은 답을 향해 걷고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눈여겨본 것은 두 도시가 노년을 위해 밤을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시안은 밤을 스펙터클로 채웁니다. 8,000여 점의 도용과 4만 점의 청동기를 품은 병마용 박물관에서 낮을 보내고, 밤이 되면 대당불야성의 화려한 조명과 퍼포먼스 속으로 들어가는 식입니다. 경주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월정교의 은은한 야간 조명, 동궁과 월지의 조용한 야간 개장. 화려함 대신 반영(反映)과 침묵을 골랐습니다. 시안에서 만난 어느 시니어 관광객이 “여기 오면 내가 황제가 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면, 경주 대릉원 근처 벤치에 앉아 계시던 어르신은 제게 “그냥 걷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하셨습니다. 두 말이 저는 모두 진심이라고 느꼈습니다.
왜 저는 이 두 장면이 그토록 마음에 오래 남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도 두 도시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결국 같은 질문에 답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다시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시안의 황제 코스프레도, 경주의 조용한 산책도, 결국은 역사라는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비춰보려는 몸짓이었습니다. 스케일이 다르다고 해서 그 갈망의 무게까지 다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규모가 작은 경주가 ‘느림’이라는 뚜렷한 개성을 가졌다는 사실이, 시안의 화려함 앞에서도 결코 위축될 이유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흐름은 두 나라의 정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었습니다. 경주시는 2025년 노인복지 예산으로 2,563억 원을 편성해 경로당·노인일자리·기초연금을 뒷받침하고 있었고, 시안을 포함한 중국은 ‘은발경제(银发经济)’ 정책 아래 시니어 전용 객실과 편의시설 기준을 빠르게 법제화하는 중이었습니다. 국영박물관은 65세 이상 무료입장이 이미 자리 잡았고, 고령친화 객실 점유율은 90%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2025년 11월 경주에서 APEC 정상회의가 열리며 이미 20만 명 넘는 중국인이 이 도시를 ‘학습’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두 도시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 책을 쓰면서 자꾸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세대에게 ‘빠르게 많이’를 권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작 그분들이 원하는 것은 ‘천천히 오래’는 아니었는지 하고 말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의 부모님, 혹은 여러분 자신이 나이 들었을 때, 화려한 광장의 스펙터클과 조용한 돌계단의 산책 중 어느 쪽에 더 마음이 끌리시나요. 정답은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 질문을 한 번쯤 던져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노년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디지털 실버」 제23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시안과 경주, 두 고도가 시니어를 맞이하는 방식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책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4-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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