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저는 서울 한 자치구의 보행로에서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한 분을 따라 걸은 적이 있습니다. 200미터쯤 걸으니 정말 벤치가 나왔고, 할머니는 익숙하게 앉아 숨을 고르셨습니다. “여기 벤치가 생기고 나서야 마음 놓고 나올 수 있게 됐어요.” 그 한마디가 이번 장을 쓰게 된 계기였습니다. 도시가 노인을 위해 무엇을 바꾸면, 그 노인은 비로소 다시 걷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그날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제 책 「함께 늙어가는 법」 제3장에서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고령친화도시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철학이다. 아흔 살 노인이 걸을 수 있다면 아이도, 장애인도, 임산부도 걸을 수 있다.” WHO 고령친화도시 창시자 알렉상드르 칼라체가 2023년 리우 글로벌 포럼에서 한 말을 인용한 대목인데, 취재를 다니는 내내 이 문장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좋은 도시란 노인 전용 설계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설계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숫자로 보면 두 나라의 다급함이 더 또렷해집니다. 한국은 2024년 말 65세 이상 인구가 1,024만 명을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습니다. 같은 시점 중국은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031만 명, 65세 이상은 2억 2,02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5.6%에 이릅니다. 2025년 6월 기준 한국은 63개 지자체가 WHO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GNAFCC)에 가입했고, 중국은 999개였던 노인친화형 사회구를 2,999개로 늘린 뒤 2025년까지 5,000개를 채우겠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문제 앞에서 두 나라가 고른 답은 정반대였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것이 벤치와 저상버스였다면, 상하이에서 만난 것은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상하이는 2023년 기준 60세 이상 인구가 568만 명, 36.8%로 중국에서 가장 늙은 도시입니다. 그곳 사회구를 걸으며 놀랐던 건 “9073 구조”라는 원칙이었습니다. 자택에서 90%, 사회구 돌봄으로 7%, 시설에서 3%가 노년을 보낸다는 뜻인데, 사회구마다 종합양로서비스센터와 노인식당을 최소 두 곳씩 의무적으로 두고 있었습니다. 한국이 도시 전체를 다듬는 톱다운 방식이라면, 중국은 마을 단위를 촘촘하게 복제하는 바텀업 방식이었습니다.
상하이의 한 노인식당에서 저는 여든두 살의 왕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는 매일 정오면 지팡이 없이도 걸어올 수 있는 거리에 식당이 생긴 뒤로, 하루 세 끼 중 두 끼를 이곳에서 해결한다고 했습니다. 제 책 「함께 늙어가는 법」에는 그날의 대화가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혼자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짧아졌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돌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크고 무거운 개념인지, 그리고 그것이 실은 밥 한 그릇처럼 작은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두고서야 저는 왜 제가 그 할머니의 한마디에 그토록 마음이 갔는지 알았습니다. 벤치 하나, 노인식당 한 곳은 작은 시설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사회로 나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르는 경계선이었습니다. 서울시가 2024년 도입한 ‘동행식당’이 65세 이상 혼밥 어르신에게 한 끼 8,000원 전후로 500개소를 제공하는 것도, 상하이가 노인식당 1,864곳을 사회구마다 배치한 것도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가.”
이런 흐름은 두 나라 모두에서 인구구조가 만든 필연입니다. 한국은 서울시 4차 고령친화도시 실행계획(2024~2028)에서 저상버스 도입률을 2025년까지 100%로 끌어올리겠다고 명시했고, 50+재단은 연 12만 명에게 평생학습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상하이시 양로서비스 발전 14.5 규획」을 통해 사회구 반경 15분 안에 의료·식당·문화시설·긴급호출점을 모두 두는 ’15분 생활권’을 핵심 지표로 못박았습니다. 두 나라 모두 고령친화도시를 복지 항목이 아니라 도시계획의 기본값으로 옮겨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36%를 넘어섰고,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역시 60세 이상 독거노인이 1억 명에 육박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누구와 사는가’보다 ‘누구와 밥을 먹는가’가 노년의 고립을 가르는 더 정확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숫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결국 고령친화도시라는 거창한 말이 가리키는 것은 ‘식탁 하나, 벤치 하나’라는 지극히 소박한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부모님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오늘 당장 필요한 벤치와 식탁은 어디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취재를 마치고 저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200미터마다 앉을 곳이 있는지, 15분 안에 밥 한 끼를 해결할 곳이 있는지. 이 질문은 노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 나이가 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 여러분의 동네는 어떤가요. 걸어서 몇 분 안에 벤치와 밥집과 병원이 있는지, 한번 헤아려 보셨으면 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3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서울과 상하이 두 도시의 구체적인 수치와 사례, 그리고 한국 기업이 이 흐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까지 함께 풀어두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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