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유론] 새들이 울음을 그치기도 전에, 알림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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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K-치유의 기준, 한국통합치유협회(KIHA) 협회장 송정숙입니다. 지난달 KIHA 워크숍에서 만난 한 30대 후반 프리랜서 기획자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손목 밴드의 진동으로 하루를 엽니다. 간밤의 심박변이도와 수면 단계를 기기가 먼저 읽어 낸 뒤, 그날의 리듬을 문장 하나로 건네주는 방식입니다. 그가 그날 받아 든 문장은 “오늘은 걷는 쪽이 낫겠습니다”였습니다.

이런 아침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습니다. 기기가 기준선 데이터를 모아 스트레스 수준을 가늠하고, 그날그날 다른 결의 돌봄을 권하는 흐름 — KIHA 이번 학기 교육과정이 ‘하루 통합 돌봄’이라 이름 붙인 모델의 출발점입니다. 숫자는 아침에 가장 정직합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오전 아홉 시가 지나면 화면은 슬며시 뒤로 물러납니다. 그 기획자의 하루 계획표에는 숲길 산책과 짧은 마음챙김, 그리고 요가 한 시간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향을 낮게 태우는 아로마 코너도 함께였습니다. 화면이 정한 방향을, 몸이 실제로 걸어 들어가는 시간입니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치유론 © 송정숙 칼럼니스트

오후 세 시, 숲이 먼저 말을 걸었다흙길로 접어들자 소나무 냄새가 먼저 다가왔고, 자갈 밟는 소리 사이로 새 몇 마리가 울다 그쳤습니다. 그 짧은 정적 한가운데서 손목이 가볍게 떨렸습니다. 지금 속도를 늦추라는 신호였습니다. 몸에 붙은 기기가 활동 중 생체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피다가, 쉬어 갈 적절한 지점을 짚어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걸음을 늦추자는 판단은 기기가 했지만, 소나무 냄새를 맡고 발밑 흙의 감촉을 느낀 건 순전히 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저녁이 되면 그날의 결과가 두 갈래로 정리됩니다. 하나는 심박변이도 개선, 수면 질 향상 같은 객관적 지표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스스로 적어 내려가는 주관적 기록입니다. 기기는 이 둘을 겹쳐 보며 무엇이 실제로 효과적이었는지 짚어 줍니다. 그런데 정작 그 기획자가 노트에 남긴 문장은 숫자와 무관했습니다. “숲 초입에서 아무 생각도 안 든 순간이 좋았다”였습니다.

[코리안투데이] 디지털치유론 © 송정숙 칼럼니스트

밤, 숫자가 다 말해주지 않는 것이달 미국 식품의약국은 인공지능 기반 의사결정 지지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침을 새로 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권고 하나를 내놓을 때, 그 근거를 사람이 스스로 짚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핵심이었습니다. 판단을 완전히 넘겨받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끝까지 근거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몇 해 전 한 글로벌 기업의 건강 소프트웨어가 큰 기대 속에 출발했다가 현장 워크플로에 스며들지 못하고 조용히 물러난 사례도 같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데이터가 아무리 정교해도, 그것이 실제 하루의 결과 사람 사이의 몸짓과 맞물리지 않으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정신건강 관련 애플리케이션 시장이 올해 90억 달러를 넘어서고 2030년에는 그 두 배 가까이 커질 거라는 수치가 최근 보고서에 실렸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손안의 기기에 자신의 하루를 맡기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기획자가 숲 초입에서 얻은 것 —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던 그 몇 초는 어떤 알고리즘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었습니다.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 곁에 있어 주는 감각, 순간적으로 스치는 직관, 그리고 자연이 원래 지니고 있던 회복의 힘은 기기가 대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기기는 하루의 리듬을 짚어 주는 나침반일 뿐, 그 길을 실제로 걷는 몫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기획자는 요즘도 새벽 진동으로 하루를 열지만, 잠들기 전 노트에는 숫자 대신 그날 숲에서 스친 냄새와 소리를 적습니다. 두 갈래 기록이 나란히 쌓여 갈수록, 어느 쪽이 하루를 더 잘 말해 주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몫으로 남습니다. KIHA도 다음 만남에서는 그 판단을 회원들 스스로 직접 설계해 보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송정숙 협회장의 저서 「디지털치유론 Level I」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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