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3층 라운지에서 저는 낡은 캐리어 옆에 나란히 앉은 노부부를 만났습니다. 한 분은 여권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계속 넘겨 보고 계셨고, 다른 한 분은 창밖으로 활주로를 바라보며 “이제 진짜 가는구나” 하고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목적지는 태국 치앙마이, 짐 속에는 겨울옷 대신 얇은 셔츠 몇 벌뿐이었습니다. 저는 그 짧은 대화가 이번 장의 문을 여는 장면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취재 노트에 적어 둔 문장 하나가 있습니다. “더 이상 양로원은 고향 근처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이 없다.” 챕터를 쓰면서 저는 이 한 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는 태국 치앙마이와 필리핀 바기오에서 새 삶을 설계하고, 중국의 신노년층은 하이난 싼야와 윈난 다리에서 겨울을 보낸다는 대목을 쓰면서, 저는 이것이 더 이상 특별한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숫자를 짚어 보면 왜 이런 이동이 시작됐는지가 보입니다.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3%를 넘어서며 초고령사회에 공식 진입했고, 중국은 2024년 말 기준 60세 이상 인구가 3억 1031만 명, 65세 이상은 2억 2023만 명에 이르러 세계 최대 고령국가가 되었습니다. 수요가 폭발하는 속도를 요양 인프라가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양국 공통의 숙제로 떠오르면서, 해법은 자연스레 국경 밖으로 시야를 넓히게 되었습니다. 헨리&파트너스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한국 자산가 1,200명이 국외로 거주지를 옮겼고, 그 상당수가 은퇴 후 생활비 절감과 온화한 기후를 찾아 동남아로 향한 ‘실버 이민’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그 노부부처럼요. 태국 빌라에서의 월 생활비는 250만 원, 필리핀 바기오는 180만 원 선입니다. 서울 강남 실버타운의 보증금 수억 원, 월 400만 원대 생활비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용입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조금 다른 결의 이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겨울은 하이난, 여름은 헤이룽장으로 옮겨 사는 ‘후냐오양라오(候鸟养老)’, 우리말로 철새 양로가 국민적인 흐름이 되어 2024년 그 이동 인구가 45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한국의 이동이 ‘국경을 건너는’ 형태라면, 중국의 이동은 ‘넓은 국토 안에서 계절을 좇는’ 형태라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그 중 일부는 이미 태국과 말레이시아, 일본까지 시야를 넓히고 있었습니다. 방향은 달라도 결국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겁니다. 노년을 어디에서 보낼 것인가.
저는 이 두 흐름을 나란히 놓고 보면서, 국경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얇은 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광둥-홍콩-마카오 대만구, 이른바 GBA에서는 홍콩의 공공의료보험을 광둥성 양로원에서 그대로 쓸 수 있고, 마카오 연금 수급자는 주하이에서 생활비를 아낍니다. EY차이나의 보고서에 실린 문장을 저는 책에 그대로 옮겨 두었습니다. “수요는 한 곳에 쌓이고 공급은 다른 곳에 있을 때, 국경은 관문이 아니라 다리가 된다.”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며, 제가 인천공항에서 만난 노부부가 짐을 꾸리게 만든 것도 결국 같은 원리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흐름을 정책과 산업의 언어로 옮기면 몇 가지 갈래가 보입니다. 강남권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는 중국 실버층이 2024년 한 해 28만 명을 넘었고, 반대로 한국인은 태국과 베트남에서 저비용 재활을 받습니다. 양로와 의료가 국경을 넘어 결합되는 이 흐름을, 저는 ‘메디케이션 시니어 패키지’라는 다소 딱딱한 이름으로 챕터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중국의 스마트 양로 시장이 2025년 8조 5천억 위안 규모로 5년 만에 다섯 배 커졌다는 수치도 함께요. AI 돌봄 로봇과 원격 혈압·혈당 모니터링이 국경을 넘나드는 ‘디지털 양로’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는 걸, 저는 취재를 하면서 조금씩 체감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저는 통계만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초고령사회 진입과 중국의 고령인구 3억 명 돌파는 결국 우리 각자의 부모님, 혹은 몇 년 뒤의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정책이 통합돌봄과 스마트 양로 시범사업으로 움직이고 있는 지금, 저는 이 흐름이 산업의 언어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장을 썼습니다. 기후와 의료, 문화라는 세 요소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그리고 그 결합의 중심에 사람이 있는지를 계속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부모님이, 혹은 스스로가 노년을 보낼 곳을 국경 너머에서 선택할 수 있다면, 그 선택은 자유로울까요, 아니면 또 다른 종류의 떠밀림일까요. 저는 인천공항에서 만난 그 노부부의 표정에서 두 가지를 동시에 읽었습니다. 설렘과 약간의 불안이었습니다. 그 감정을 함께 이야기해 볼 수 있다면, 저는 이 칼럼을 쓴 보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7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도서 상세 페이지는 다음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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