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권성화] 안방의 숨결에서 세계의 울림으로, 안동 내방가사가 전하는 위대한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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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칼럼-권성화] 독립운동가의 뜨거운 기개와 숨결이 흐르는 이곳 안동에는 세월의 켜가 묵직하게 쌓인 특별한 공간이 있다. 안동내방가사보존회 이선자 회장님과 어머니들을 찾아뵌 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래된 둘둘말이 한지를 조심스레 펼치면 그 안에서 어머니의 남모를 속앓이와 자식을 향한 아낌없는 자랑, 그리고 고단하지만 정갈했던 삶의 이야기들이 소곤소곤 귓가에 밀려든다. 4년 전 처음 뵈었을 때 세상을 향해 당당히 목소리를 내던 그 기세 역력하고 카랑카랑했던 음성은, 이제 세월의 결을 따라 빛바랜 여운을 담은 소리가 되어 한층 그윽하고 깊게 가슴을 울린다.

 [코리안투데이] 한지와 4음보에 새긴 한국 여성의 삶, 안동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내방가사의 울림  © 김현수 기자

4음보로 흘러가는 내방가사의 운율은 마치 어릴 적 들었던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절제되어 있다. 그 정갈한 율조는 한국 여성 특유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며, 마음에 미묘한 소리의 파동을 일으킨다. 세파에 치여 쌓인 온갖 스트레스를 조용히 씻겨 내려가게 하는 이 소리는 어머니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실하고 맑은 명약과도 같다.

‘딸그락, 딸그락…’

이야기를 나누다 점심시간이 되면 위층에서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들이 손수 국을 끓이고 정성스레 반찬을 내어놓으시면, 어느새 온 식구가 모인 대가족처럼 북적이는 따스한 한 상이 차려진다. 편리함이라는 문명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이곳에 서면 서로를 품어주는 따뜻한 공동체의 삶을 또 한켠 들여다보게 된다.

 [코리안투데이] 어머니들의 삶과 독립의 기억을 품은 기록문학, 안동 내방가사의 깊은 숨결  © 김현수 기자

서양 음악사에서 여성의 생애와 사랑을 다룬 대표적인 명작으로 슈만의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삶(Frauenliebe und Leben)〉이 꼽힌다. 나 역시 그 아름다운 가곡을 직접 연주하며 서양 예술이 담아낸 여성의 일생을 표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독일 베를린 무대에서 우리의 내방가사를 국악으로 창작해 선보였을 때, 나는 클래식 음악과는 또 다른 차원의 경탄과 깊은 소름을 느꼈다.

슈만의 작품처럼 서구에도 여성의 삶을 노래한 문헌이 존재하지만, 한국의 내방가사는 한 개인의 낭만적 서사를 넘어 가부장제와 국난이라는 시대적 시련 속에서 서민부터 양반가에 이르기까지 한국 여성의 전반적인 삶과 한(恨), 숭고한 모성과 생명력을 문학이자 운율(音律)로 기록해 낸 유일무이한 세계적 유산이다. 동양, 특히 한국 여성의 일생과 정신세계를 이토록 정교하고 절제된 4음보의 소리로 담아낸 문헌은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임청각 석주 이상룡 선생의 부인이신 백하 김우락 여사께서 만주 망명길의 고초와 결연한 독립 의지를 담아내신 〈해도교거사(海島僑居辭)〉, 그리고 부모에 대한 효와 삶의 도리를 노래한 〈권효가(勸孝歌)〉를 국악의 소리로 풀어 작품화해 베를린 무대에 올렸을 때, 언어와 문화가 다른 현지 관객들은 국악 선율 속에 실린 한국 어머니들의 단단한 서사와 아늑한 소리의 파동에 숨을 죽였다.

연주가 끝난 후 이어진 뜨거운 기립박수와 눈시울을 붉히던 독일 관객들의 모습은, 내방가사가 이제 세계인이 주목하고 감동할 수밖에 없는 동양 여성상의 위대한 보편적 유산임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코리아투데이] 안방에서 시작된 여성의 목소리, 한지와 국악을 넘어 세계와 만나는 문화유산  © 김현수 기자

이곳을 통해 지켜지고 전파되는 문헌과 나지막한 소리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닮아가고 싶은 동양의 이상적인 어머니상과 위대함을 그려보게 해준다. 세월이 흘러 연세가 드시고 세상에서 조금 소외되어가는 듯해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단 한두 분이 자리를 지키고 계실지라도 그 당당한 존재감은 한국 어머니의 위대함 그 자체다.

반가운 소식도 기다리고 있다. 오는 10월 16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열리는 한지 전시를 통해 안동 내방가사의 귀한 작품들이 세상 앞에 그 고결한 자태를 드러낸다. 천 년을 견디는 한지의 결 위에 붓글씨로 새겨진 어머니들의 삶과 숨결은, 서구 문명과 속도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치유이자 우리가 돌아가야 할 정신적 고향을 보여줄 것이다.

안동 안방의 나지막한 숨결에서 시작되어 세계를 울린 내방가사. 그 소리와 한지의 향기가 앞으로도 미래의 이정표가 되어 영원히 퍼져나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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