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브릿지] 제5권 · 제15장 · 할머니가 손녀에게 배운 그 하루, 효가 뒤집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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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지난달 구로의 한 경로당에서였습니다. 71세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앉은 손녀에게 “네가 알려준 대로 은행 앱으로 용돈 보냈어, 맞지?” 하고 물으셨습니다. 손녀는 웃으며 “할머니 잘하셨어요”라고 답했지요. 그 짧은 대화를 지켜보며 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부심이 담긴 할머니의 얼굴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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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장을 쓰게 된 계기도 비슷한 장면이었습니다. 카페에서 초등학생 손자가 70대 할머니의 손을 잡고 스마트폰 화면을 가리키며 “할머니, 이거 누르면 돈이 바로 가요”라고 설명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던 순서가, 손바닥만 한 화면 하나 앞에서 조용히 뒤집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현상에 ‘디지털 반포(数字反哺)’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어미 까마귀가 늙으면 새끼가 먹이를 물어다 준다는 반포지효(反哺之孝)의 방향이, 스마트폰 시대에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취재를 하며 숫자로도 확인했습니다. 2025년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어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들어섰고, 중국은 60세 이상이 3억 1천만 명, 전체의 22.0%에 이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조사를 보면 한국 고령층(55세 이상)의 인터넷 이용률은 76.9%로 2020년 55.2%에서 불과 4년 만에 크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65~69세는 93.9%로 청장년과 거의 차이가 없는데, 80세 이상은 49.1%에 그칩니다. 70대 이상의 ‘디지털 정보화 활용 수준’은 100점 만점에 43.0점, ‘역량 수준’은 36.9점이었습니다. 같은 노인이라 불러도 그 안의 격차가 이렇게 큽니다.

중국은 규모 면에서 더 압도적입니다.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터넷 이용자는 1억 5,620만 명이지만, 이는 전체 60세 이상 인구의 49.9%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중국에는 여전히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노인이 약 1억 5천만 명 존재하는 셈입니다. 60세 미만의 이용률 89.09%와 견주면 그 간극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갑니다. 그럼에도 두 나라에서 제가 공통으로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노인이 스마트폰을 배우는 경로 1위는 늘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50+재단 조사에서 65세 이상이 자녀·손주에게 배운 비율은 68.3%였고, 베이징대학교 인구연구소 조사에서는 60세 이상이 자녀(57.2%)와 손주(21.8%)를 합쳐 79.0%가 가족을 통해 위챗을 배웠습니다.

베이징대 陈云 교수를 인터뷰에서 만났을 때 그가 남긴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디지털 반포는 단순한 기술 전수가 아니라 권력 관계의 역전이다. 부모와 조부모가 학생이 되고 자녀와 손주가 교사가 되는 순간, 가족 내 위계는 수평화되고 세대 간 대화의 밀도가 오히려 증가한다.” 저는 이 말을 듣고서야 그 구로 경로당 할머니의 표정이 왜 그렇게 밝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배움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손녀와 나눈 또 하나의 대화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중국 산시성 타이위안에서 305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된 세대 간 역멘토링 프로그램에서는 참가자들의 디지털 리터러시가 대조군보다 42% 높아졌을 뿐 아니라, 우울감이 23% 줄었다는 결과도 나왔습니다. 기술을 배우는 일이 마음을 회복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이 풍경이 전부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취재 중 만난 한 대학생은 “할머니께 같은 설명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지친다”고 솔직히 말해주었습니다. 실제로 한국 청년의 42%, 중국 청년의 38%가 조부모에게 반복 설명하는 일을 스트레스로 꼽았다는 조사도 있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은 주민센터·도서관 중심의 ‘디지털배움터’를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으로 넓히는 중이고, 중국은 2021년부터 앱과 웹사이트에 노인 친화 모드를 의무화하는 ‘적노화(适老化)’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의 다정함에만 기대는 구조는 오래가기 어렵다는 것을, 두 나라가 비슷한 시기에 깨달은 셈입니다.

저는 이 장을 쓰며 독자들께 묻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가족 안에서 가장 최근에 누군가를 가르친 사람은 누구였나요. 그리고 그 배움이 정말 기술뿐이었을까요. 저는 한중 양국의 여러 가정을 다니며, 스마트폰 화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간 것이 사실은 훨씬 오래된 것—관심과 존중—이었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세대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그 순간이야말로, 고령화 시대를 함께 건너는 가장 소박하고도 확실한 다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 책 「실버 브릿지: 함께 늙어가는 법」 제15장에 더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한중 양국의 통계와 더 많은 가족의 사례, 그리고 이 흐름이 열어가는 산업적 기회까지 함께 다뤘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도서 상세 페이지(https://wiabook.com/books/silverbridge-vol05-kr/)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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