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일곱 시, 저는 강화읍 관청리 고려궁지 돌계단 앞에 서 있었습니다. 안개가 걷히기 전이라 관광버스는 아직 한 대도 오지 않았고, 계단을 쓸던 할머니 한 분이 저를 보고 빗자루를 세웠습니다. “여기가 옛날엔 임금님 계시던 데야. 근데 아침엔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어.”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허리를 굽혀 계단을 쓸었습니다. 저는 그 짧은 말이 하루 종일 마음에 남았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이른 아침 강화 고려궁지 돌계단 © 장형임 칼럼니스트 |
강화는 고려의 도읍이었던 섬입니다. 13세기 몽골이 침입했을 때 고려는 개경을 떠나 이 섬으로 도읍을 옮겼고, 사십 년 가까이 이곳에서 나라를 지켰습니다. 팔만대장경을 새기기 시작한 곳도, 고려 임금들의 무덤이 남아 있는 곳도 이 섬입니다. 저는 강화에 살면서 이 사실을 늘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 강화를 부르는 말은 그 자랑과 조금 다릅니다.
요즘 강화 앞에 가장 자주 붙는 말은 인구소멸위험지역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산출하는 소멸위험지수를 기준으로 인천에서는 강화군과 옹진군이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한때 나라의 중심이었던 섬이 이제는 사라질지 모르는 곳으로 불리는 셈입니다. 저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주 주말이면 골목마다 차가 밀리고 식당마다 줄이 서는 것을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 억울함에 답을 준 숫자가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2분기 생활인구 산정 결과에 따르면 강화군의 생활인구는 65만 8,902명이었습니다. 주민등록인구의 약 9.58배에 이르는 수치입니다. 생활인구란 이곳에 주소를 둔 사람만이 아니라 일하러, 쉬러, 부모님을 뵈러 강화에 머무는 사람까지 함께 센 숫자입니다. 주말 아침 초지대교를 건너오는 차들이 바로 그 숫자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숫자가 모두 참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민등록 기준으로 보면 강화는 조용히 비어 가는 섬이고, 생활인구 기준으로 보면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섬입니다. 같은 골목을 두고 아침에는 할머니 혼자 계단을 쓸고, 점심에는 관광객이 사진을 찍습니다. 통계는 어느 창으로 내다보느냐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 줍니다. 어느 한쪽 창만 보고 섬의 운명을 말하기에는 그 창이 너무 작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인공지능에게 강화가 어떤 곳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고려의 도읍이었다는 이야기보다 소멸위험지역이라는 말이 먼저 나왔습니다. 인공지능은 세상에 많이 적힌 말을 먼저 배우기 때문입니다. 지금 강화에 대해 가장 많이 적히는 말이 소멸이라면, 앞으로 기계도 사람도 이 섬을 그렇게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통계 자체보다 더 걱정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숫자를 고치는 일보다 사람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일에 마음이 갑니다. 하루 다녀가는 사람이 하룻밤을 자고, 하룻밤 자던 사람이 한 계절을 살아 보고, 그러다 몇 사람이 주소를 옮겨 오는 순서입니다. 65만이라는 생활인구는 그 첫 계단에 이미 올라선 사람들의 숫자입니다. 할머니가 쓸던 그 돌계단처럼, 한 칸씩 올라오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사는 동네는 지금 어떤 숫자로 불리고 있습니까? 그 숫자가 여러분이 아는 동네의 얼굴과 같습니까, 아니면 아침 일곱 시의 고려궁지처럼 절반만 보여 주고 있습니까? 통계 뒤에 가려진 나머지 절반을 여러분은 어떤 말로 채우고 계신가요?
저는 내일 아침에도 고려궁지 계단에 가 보려고 합니다. 할머니를 다시 만나면 강화의 생활인구가 65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드릴 생각입니다. 아마 “그 사람들 다 어디 있는데” 하고 웃으실 것 같습니다. 그 웃음 뒤에 이 섬의 다음 장이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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