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애 <행복한 얼룩이>는 한때 동네를 호령했던 길고양이와 작가가 8년 동안 이어온 인연에서 출발한다. 고선애 작가는 2026년 3월 완성한 작품 행복한 얼룩이(Happy Cat)에 늙어가는 한 생명을 바라보는 애정과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작품 속 얼룩이는 머리 위에 왕관을 쓰고 있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히려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은 이후의 삶을 향한다.
![]() [코리안투데이]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은 길고양이…8년의 인연을 은박산화와 강릉전통자수에 담다 |
작품 <행복한 얼룩이>는 85×120cm, 50호 규모다. 고선애 작가는 은박산화를 활용했서 표현했다. 특히 은박이 산화하면서 만들어내는 우연한 흔적으로 얼룩이의 몸을 표현했다. 작품에 나타나는 청록과 갈색, 은빛이 뒤섞인 표면은 일정하게 계산된 색면과 다른 느낌을 만든다. 고양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처럼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이 한 몸 위에 겹쳐 보인다.
고양이 양옆에는 화려한 색의 전통적인 문양이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작가가 밝힌 작품 설명에 따르면 이 부분에는 강릉전통자수가 사용됐다. 고선애 작가는 이를 통해 사랑과 행복이 얼룩이와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고양이 머리 위의 왕관과 양쪽의 화려한 장식은 작품을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화면 중앙으로 이끈다.
그러나 고선애 <행복한 얼룩이>의 이야기는 화려한 왕관보다 실제 길고양이 얼룩이의 삶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작가가 얼룩이를 처음 만난 것은 약 8년 전이다. 당시 얼룩이는 동네의 대장 고양이였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언제나 당당하게 동네를 돌아다녔고 수컷 고양이들과 싸워도 좀처럼 지지 않았다. 그렇게 강한 존재였던 얼룩이는 몇 해 전 중성화 수술을 받은 뒤 대장 자리를 노란 고양이에게 내주었다.
시간은 얼룩이에게도 예외 없이 흘렀다. 몸은 점점 작아졌고 힘도 예전 같지 않아졌다. 이제는 천천히 걷거나 잠을 자면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작가는 전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자신을 지켜봐 온 사람을 알아보는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고선애 작가는 그런 얼룩이를 두고 기특하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얼룩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한다고 작품의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고 작품을 다시 바라보면 머리 위의 왕관도 다르게 읽힌다. 화면에서는 여전히 왕관이 얼룩이 위에 있지만, 작품의 서사는 한때 대장이었던 고양이가 그 자리를 내려놓고 맞이한 시간에 집중한다. 왕관은 현재의 권위를 보여주는 장식이라기보다 얼룩이가 지나온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각적 장치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은 얼룩이라는 표현은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젊고 강했던 시절이 지나도 한 생명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싸움에서 이기는 힘 대신 천천히 걷고 쉬는 시간이 찾아왔지만, 얼룩이는 여전히 작가에게 소중한 존재다.
고선애 <행복한 얼룩이>에서 눈여겨볼 또 하나의 요소는 현대적인 재료와 전통적 조형 요소의 만남이다. 은박산화가 만드는 예측하기 어려운 흔적과 강릉전통자수가 지닌 색채가 한 화면에서 만난다. 작가는 이 서로 다른 표현을 고양이라는 친숙한 존재 안에서 연결했다.
고선애는 한국미술협회, 한국민화협회, 한국민화진흥협회와 대갈화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서 제공된 작가 자료에는 개인전 7회, 아트페어 11회, 단체전 50회 이상 참여했으며 30회 이상의 수상 경험이 있다고 소개돼 있다. 또한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으며, 책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의 표지 일러스트에도 참여했다.
![]() [코리안투데이] 한때 동네 대장이었던 얼룩이, 노묘가 된 친구에게 보내는 고선애 작가의 따뜻한 응원 |
이번 작품은 제12회 대갈화사 회원전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제공된 초대장에 따르면 전시는 2026년 10월 7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열린다. 개막은 10월 7일 오후 5시다. 대갈화사회는 현대민화공모전 본상 수상 작가들의 모임이며, 이번 회원전에는 고선애를 포함한 4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것으로 안내됐다.
<행복한 얼룩이>는 강했던 한 길고양이의 전성기를 기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세월을 지나 힘이 줄어든 현재까지 한 생명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작품의 중심에 있다. 얼룩이의 몸에 남겨진 우연한 산화의 흔적과 그 주변을 감싸는 전통자수의 색은 지나간 시간과 앞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시간을 한 화면에 놓는다.
![]() ▲ [코리안투데이] 제12회 대갈화사 회원전에서 만나는 행복한 얼룩이…왕관 너머에 담긴 한 생명의 시간 © 김현수 기자 |
왕관을 내려놓았다고 해서 얼룩이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동네 대장일 필요도, 다른 고양이와 싸워 이길 필요도 없다. 고선애가 작품을 통해 바라는 것은 훨씬 소박하다.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본 얼룩이가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고선애 <행복한 얼룩이>의 왕관은 특별하다.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은 뒤에도 계속되는 삶, 그리고 그 삶을 조용히 응원하는 사람의 마음이 한 마리 고양이의 초상 안에 머문다. <행복한 얼룩이>라는 제목 그대로, 작품의 마지막 메시지는 결국 행복을 향한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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