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는 사진 속 한순간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짧은 언어로 그 생각을 확장하는 문학이다. 김충재 시인의 「푸른 시절」은 덩굴에 매달린 푸른 호박 하나를 통해 젊음과 늙음, 그리고 한 생이 익어 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 [코리안투데이] 김충재 시인의 「푸른 시절」 © 장시백 기자 |
사진 속 호박은 아직 푸르다. 제법 몸집은 커졌지만 황금빛 늙은호박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시인은 그 모습을 보며 말한다.
“황금빛 주름진 늙은이가 되려면
갈 길이 멀다”
여기서 ‘황금빛 주름진 늙은이’는 단순히 잘 익은 호박을 가리키는 말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의 노년이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특히 늙음을 ‘황금빛’으로 표현한 시선이 인상적이다. 주름은 쇠락의 흔적이 아니라 긴 시간을 견디며 충분히 익어 온 생의 무늬가 된다.
우리는 흔히 젊음을 삶의 절정으로 여기고 늙음을 잃어 가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는 반대편에서 바라본다. 늙는다는 것은 그 나이에 이를 만큼 살아냈다는 뜻이며, 수많은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완숙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호박에게 그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익어 가는 길목
비빔밥이 군침을 흘리고
보글보글 된장찌개가 눈웃음친다”
여기서 시는 철학을 익살로 바꿔 놓는다. 사람이 음식에 군침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비빔밥이 호박을 탐내고, 된장찌개가 눈웃음을 친다. 호박이 황금빛 늙은이가 되기 전에 밥상으로 불려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웃음을 주는 장면이지만 그 뒤에는 삶의 냉정한 이치가 숨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먼 미래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늙으면 무엇을 하고, 몇 년 뒤에는 어떻게 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그 약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푸른 호박에게 늙은호박이 되는 일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듯, 인간에게도 노년은 누구에게나 예정되어 있으면서 누구에게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갈 길이 멀다”는 한마디가 가볍지 않다. 먼 길이 남았다는 뜻이면서,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 순간 ‘늙음’은 피하고 싶은 시간이 아니라 어쩌면 무사히 도착해야 할 삶의 한 지점이 된다.
제목 「푸른 시절」도 그래서 의미가 깊다. 푸르다는 것은 젊다는 뜻이고, 아직 익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젊음은 가능성이 많은 시간이지만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간이다. 사람 역시 살아가면서 기쁨과 실패, 사랑과 상실을 겪고 그 경험을 자신의 안에 쌓아 간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생도 서서히 익는다.
김충재 시인의 「푸른 시절」은 거창한 철학을 내세우지 않는다. 호박과 비빔밥, 된장찌개라는 소박한 생활의 언어로 웃음을 만들어 놓고, 그 웃음 뒤에서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젊음이 아름다운 것은 앞으로 갈 길이 많기 때문이고, 늙음이 귀한 것은 그 먼 길을 실제로 건너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푸른 호박이 황금빛으로 익는 데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의 삶에도 자신만의 익어 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 ‘황금빛 주름진 늙은이’는 끝을 향해 가는 모습이라기보다, 한 생을 충분히 살아낸 존재의 모습에 가깝다. 「푸른 시절」은 푸른 호박 하나를 통해 조용히 묻는다. 우리는 늙음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나이에 이를 만큼 살아낸 시간을 귀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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