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오후, 저는 강화읍 시장 앞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여름이면 관광버스가 줄을 서던 자리에 찬바람만 오가고, 문을 연 가게보다 셔터를 내린 가게가 더 많았습니다. 순무김치를 파는 할머니 한 분이 난로 옆에서 손을 녹이다가 저를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겨울엔 사람이 없어. 봄까지는 그냥 버티는 거야.” 그 한마디가 그날 내내 제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겨울 강화읍 시장 앞 한산한 거리 © 장형임 칼럼니스트 |
강화의 벌이는 계절을 탑니다. 봄에는 진달래 보러, 여름에는 바다 보러, 가을에는 단풍과 새우젓 보러 사람들이 밀려오다가, 첫눈이 내리면 거리가 한꺼번에 조용해집니다. 제가 아는 민박 주인은 “석 달은 손님 방이 창고가 돼”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그 웃음 뒤에 난방비와 빈 달력이 있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일 년의 벌이를 아홉 달 안에 다 해내야 하는 셈입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강화의 이야기를 쓰고, 강화의 사진을 찍고, 강화를 찾는 분들께 무언가를 안내하는 일은 사람이 오는 계절에 몰려 있습니다. 겨울이 오면 원고 청탁도 뜸해지고, 저도 난로 옆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올겨울에는 기다리는 대신 궁리를 해 보기로 했습니다. 계절을 타지 않는 벌이란 무엇일까, 하는 궁리입니다.
이 연재의 제목처럼, 저는 섬에서 인공지능과 함께 일합니다.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인공지능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제 겨울 일과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이 대단한 답을 내놓아서가 아닙니다. 질문을 하다 보면 제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생각이 말이 되어 나오고, 말이 되면 다음 걸음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겨울의 빈 시간은 그렇게 쓰기에 알맞았습니다.
제가 먼저 떠올린 것은 그 할머니의 순무김치였습니다. 시장에 사람이 없어도 순무는 겨울에 가장 맛이 듭니다. 문제는 김치가 아니라, 김치를 사러 올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오지 않아도 김치가 갈 수 있으면 됩니다. 저는 인공지능과 함께 할머니의 김치를 소개하는 글을 몇 번이고 고쳐 써 보았고, 사진을 어떻게 찍으면 좋을지도 물어보았습니다. 택배 상자 하나에 겨울 강화의 맛과 이야기를 함께 담는 일, 그것이 제가 생각한 첫 번째 궁리였습니다.
두 번째는 민박집이었습니다. 빈방을 창고로 쓰는 대신, 겨울에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주인과 마주 앉았습니다. 눈 내린 갯벌을 보러 오는 사람, 조용히 글을 쓰러 오는 사람, 사람 없는 성곽길을 걷고 싶은 사람은 분명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닿을 안내글을 인공지능과 함께 겨울 판으로 따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주인은 “이런 걸 누가 읽겠어” 하면서도 원고를 세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물론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습니다. 평생 손으로 일해 온 분들에게 기계를 내밀며 이렇게 하시라고 말하는 것은 제 몫이 아닙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들이 하던 일에 계절을 넘어갈 수 있는 작은 다리 하나를 놓아 드리는 것뿐입니다. 김치는 여전히 할머니가 담그고, 방은 여전히 주인이 치웁니다. 저와 인공지능은 그 일이 겨울에도 누군가에게 닿도록 글과 사진을 거들 뿐입니다.
여러분의 벌이는 어떠신가요. 한 해의 어느 계절에 몰려 있지는 않으신가요. 그리고 비어 있는 계절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며 다음 계절을 기다리시는지요. 저는 올겨울, 기다림 대신 궁리를 택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시장 앞 그 할머니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장에 갈 때는 제가 쓴 글과 사진을 들고 가서, 이런 방법이 있다고 조용히 보여 드릴 생각입니다. 할머니가 고개를 저으셔도 괜찮습니다. 겨울 강화의 빈 거리에서 저는 이미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계절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지만, 궁리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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