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요일 아침, 저는 외포리 선착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으신 할머니 한 분이 돋보기를 코끝에 걸친 채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계셨습니다. 검지로 한 글자씩 꾹꾹 눌러 넣으시는데, 한 줄을 완성하는 데 꼬박 오 분이 걸렸습니다. 다 보내고 나서 제 쪽을 보며 쑥스럽게 웃으셨습니다. “아침 먹었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매일 한 줄씩만 보냅니다.”
![]() [코리안투데이] 버스 정류장에서 한 글자씩 문자를 쓰는 손 © 장형임 칼럼니스트 |
잠시 뒤에 답이 왔습니다. “응 먹었어 엄마도 챙겨 드셔.” 열 글자 남짓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다 읽고 나서도 한 번 더 읽으시고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셨습니다. 오 분을 들여 보낸 글에 십 초 만에 돌아온 답이었는데, 두 글의 길이는 서로 달라도 무게는 같아 보였습니다.
섬에서 거리는 킬로미터로 재지 않습니다. 배 시간으로 재고, 하루에 몇 번 없는 버스 시간으로 잽니다. 다리를 건너면 서울까지 두어 시간이라고들 하지만, 자식이 도시로 나가고 나면 실제로 얼굴을 보는 일은 명절과 명절 사이에 한 번쯤입니다. 그 사이의 긴 침묵을 메우는 것이 하루 한 줄짜리 글입니다. 길이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 한 줄이 없으면 하루가 기울어집니다.
마을 이장님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애는 글자를 안 보내요. 밥상 사진만 한 장 보내지.” 반찬 서너 가지 놓인 밥상 사진이 매일 저녁 여덟 시쯤 도착한다고 했습니다. 안부를 묻는 문장이 한 글자도 없는데, 이장님은 그 사진으로 아들이 오늘도 제때 먹고 제 방에 잘 들어갔다는 것을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이 줄어든 자리에 다른 방식의 말이 들어선 셈입니다.
저희 동네 민박을 하시는 분은 딸이 보낸 메시지를 하나도 지우지 않으십니다. 손님 없는 계절에는 화면을 위로 밀어 올려 지난 봄에 온 문장들을 다시 읽으신다고 했습니다. 왜 지우지 않으시냐고 여쭤보니 “지우면 딸이 조금씩 없어지는 것 같아서요”라고 하셨습니다. 도시에서는 넘쳐서 성가신 알림이, 섬에서는 모아두는 살림이 됩니다.
저도 한동안 안부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마음먹고 길게 쓰려니 첫 문장부터 무거워져서, 오늘은 시간 날 때 쓰자고 미루다가 그대로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짧은 글을 가볍게 여긴 탓이었습니다. 한 줄이면 부담이 없어서 매일 보낼 수 있고, 매일 보내면 그 사람의 하루가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집니다. 잘 쓴 편지 한 통보다 어설픈 한 줄 삼백 개가 사람을 더 오래 붙들어 둔다는 것을, 저는 이 섬에서 배웠습니다.
요즘은 기계가 대신 문장을 골라주고 더 다정하게 다듬어주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도구를 나쁘게만 보지는 않습니다. 눈이 어두워 글자를 못 보시던 분이 화면을 키우고, 자판이 어려운 분이 말로 이야기해 글로 옮기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다만 정류장에서 본 그 오 분을, 한 글자씩 눌러 넣던 그 손가락을 대신할 수 있는 도구는 아직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계는 문턱을 낮춰줄 뿐이고, 문턱을 넘어 말을 건네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오늘 아침, 여러분은 누구에게 한 줄을 보내셨는지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어느 마을 정류장에 앉아 여러분의 짧은 답을 기다리는 분이 계시지는 않은지요. 길게 쓸 시간이 없어서 미뤄둔 안부가 있다면, 그 안부를 열 글자로 줄여 지금 보내보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그날 버스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오르셨습니다. 창가에 앉아 다시 전화기를 꺼내시는 모습이 유리 너머로 보였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그 자리에서 오 분을 들여 한 줄을 쓰실 겁니다. 섬과 육지 사이를 가장 자주 건너다니는 것은 배도 차도 아니라, 그 한 줄입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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