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오후 다섯 시 반, 석모도 민머루 해변으로 들어가는 길가는 차로 빼곡했습니다. 삼각대를 어깨에 걸친 사람들이 줄지어 바다 쪽으로 걸어갔고, 길 옆 고구마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허리를 펴며 그 행렬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웃으며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해 떨어지면 다 가. 저 사람들 얼굴은 알아도 이름은 몰라.” 한 시간쯤 뒤 수평선이 붉게 물들자 셔터 소리가 파도 소리를 덮었고, 어둠이 내리자 주차된 차들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 [코리안투데이] 삼각대가 늘어선 석모도 민머루 해변의 낙조 © 장형임 칼럼니스트 |
저는 그 빈자리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낙조는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자리에서 내려앉는데, 그것을 보러 온 사람들의 발자국은 밤이 되면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행정안전부와 통계청이 집계한 생활인구 통계를 보면 2024년 2분기 기준 강화군의 생활인구는 65만 8,902명으로, 주민등록인구의 약 9.58배에 달했습니다. 등록된 주민 한 사람마다 아홉 명이 넘는 사람이 이 섬을 오갔다는 뜻입니다. 숫자만 보면 강화는 몹시 붐비는 섬입니다.
그런데 제가 사는 동네의 체감은 그 숫자와 조금 다릅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은 대체로 조용하고, 읍내 가게들은 저녁 여덟 시면 하나둘 불을 끕니다. 인천에서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 곳은 강화군과 옹진군, 두 곳입니다. 아홉 배의 사람이 드나드는 섬과 사라질 위험을 안고 있는 섬이 같은 땅이라는 사실을, 저는 아직 누구에게도 잘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석모도에서 민박을 하는 주인 한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름 주말엔 방이 차요. 그런데 손님들이 여기서 쓰는 돈은 방값하고 편의점 커피 한 잔이 거의 다예요.” 사진은 수천 장이 찍혀 나가는데 마을에 남는 것은 쓰레기봉투와 주차 자리 다툼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며칠 동안 생각했습니다. 방문객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방문객이 마을과 만나는 접점이 너무 적은 것이 아쉬웠습니다.
접점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낙조 시간은 누구나 검색해서 알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문을 여는 마을 밥집이 어디인지, 밭에서 막 캐낸 고구마를 누가 파는지는 검색되지 않습니다. 관광객이 손에 들고 온 지도에는 마을이 아예 표시되어 있지 않은 셈입니다. 이장님은 저에게 “우리도 뭘 팔고 싶은데 알릴 데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강화군의 ‘강화 생활권 순환경제 구축사업’이 지방소멸 대응 혁신모델로 선정되어 국비 5억 원을 확보했다는 소식을 반갑게 읽었습니다. 순환경제라는 말이 처음에는 어렵게 들렸지만, 제가 이해한 핵심은 단순했습니다. 섬에 들어온 돈과 물건과 사람이 섬 안에서 한 번이라도 더 돌게 만드는 일입니다. 사진만 가져가는 발길을 밥 한 끼, 하룻밤, 고구마 한 상자로 이어 붙이는 설계 말입니다.
제가 인공지능에 기대하는 몫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생활인구 통계는 언제 어떤 사람들이 섬에 머무는지를 알려주는 자료인데, 지금은 대개 보고서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자료를 마을 단위로 풀어 읽어주고 이번 주말 어느 해변에 몇 시쯤 사람이 몰릴지 짐작하게 해준다면, 민박 주인도 밭을 가진 할머니도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기술이 관광객을 더 불러오는 쪽보다, 이미 와 있는 사람과 마을을 잇는 쪽에 쓰이기를 저는 바랍니다.
낙조는 강화가 가진 것 중 가장 공평한 자산입니다. 누구에게도 입장료를 받지 않고, 매일 다시 떠오릅니다. 다만 그 아름다움이 마을의 살림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사진을 찍을 사람은 남아도 사진 속 마을은 남지 않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가장 아름다웠던 여행에서 돌아온 뒤, 그곳 사람의 이름 하나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다음 주말에도 석모도로 들어가는 길은 다시 붐빌 것입니다. 저는 그때 삼각대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가보려 합니다. 할머니 밭 앞에 앉아 고구마 한 상자를 사고, 이름을 여쭤볼 생각입니다. 사진은 한 장만 찍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와 이어지는 기록은 제가 강화에서 쓰고 만든 책과 서비스에도 담겨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에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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