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16화: 하늘을 읽고 사람을 살린 사람들 — 역박사와 의박사
백신을 만드는 나라, 병원을 수출하는 나라 — 그 뿌리는 1500년 전 사비성의 관청에도 있었다.
백제라는 이름을 들으면 사람들은 흔히 금동대향로나 미소 짓는 석불을 떠올린다. 그러나 백제에는 국가가 정식으로 자격을 부여한 ‘역박사(曆博士)’와 ‘의박사(醫博士)’라는 전문 관직이 있었다. 하늘의 별자리를 계산해 달력을 만드는 사람, 병자를 진맥하고 처방을 짓는 사람에게 국가가 박사라는 칭호와 관록을 주고, 그 지식을 이웃 나라에까지 체계적으로 전수했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실을 가장 자세히 기록한 문헌이 한국의 사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백제는 왜 자신의 과학기술을 스스로 기록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지식은 어떻게, 얼마나 멀리까지 퍼져 나갔을까.
◆ 시대의 풍경
6세기 백제는 성왕(재위 523~554)이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하며 국가 체제를 다시 세우던 시기였다. 남조 중국(양·진)과 활발히 교류하며 불교와 유학, 율령과 함께 천문·역법·의약 지식을 받아들였고, 동시에 이를 국가 제도로 소화해 자체적인 전문 인력 양성 체계를 만들었다. 오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그리고 약재를 채집·감별하는 채약사(採藥師)를 교대로 임명해 파견하는 제도가 이 무렵 정비된 것으로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553년 무렵 의박사 왕유릉타와 채약사 반량풍·정유타가, 554년에는 역박사가 왜(倭)로 파견되었다. 이어 602년(무왕 재위기)에는 승려 관륵이 천문·역법서와 지리·둔갑방술서까지 들고 바다를 건넜다. 왜 조정은 그가 가져온 역법을 익히게 한 뒤 604년부터 정식으로 채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백제가 이미 반세기 이상 써 오던 원가력(元嘉曆)이었다.
“日有食之” — “해가 먹히는 일이 있었다.”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남조 송이 445년 원가력을 반포하고, 곧이어 수(隋)가 남북을 통일해 태사국·태의서 같은 국가 학술기관을 정비하던 시기. 백제는 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체 박사 제도로 재편집했다.
🗿 유럽/중동
서로마 멸망(476) 이후 서유럽에는 국가가 운영하는 천문·의학 관직이 거의 사라져 수도원 의학 정도만 남았다. 반면 사산 페르시아는 준디샤푸르에 그리스·인도·페르시아 의학이 뒤섞인 국립 의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었다.
🌏 일본
아스카 시대의 왜국은 아직 자체 역법·의학 체계가 없어, 백제가 보낸 박사들에게 직접 배우는 처지였다. 604년의 원가력 채택은 그 학습의 결과물이었다.
[이미지: 사비성 관청에서 밤하늘을 관측하는 역박사와, 지식을 싣고 왜로 떠나는 배 (6~7세기)]
⚔️ 그날의 현장
“553년, 사비 나루. 의박사 왕유릉타는 마지막으로 약궤를 확인한다. 약재를 감별하는 채약사 반량풍이 대나무 상자를 배에 옮겨 싣고, 정유타는 처방을 적은 목간 다발을 품에 안는다. 뱃사람들이 밧줄을 풀자 배는 서서히 강을 따라 바다로 나아간다.”
“다음 해, 관청 옥상에서 역박사가 규(圭)의 그림자를 재고 있다. 그는 하늘의 움직임을 계산해 다음 해 농사의 절기를 정할 것이다. 그가 정리한 원가력의 계산법은, 반세기 뒤 관륵이라는 젊은 승려의 손에 다시 들려 바다를 건널 것이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지석(誌石)은 백제 과학기술의 수준을 물증으로 증명한다. 무령왕은 523년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유해는 삼년상을 치른 뒤인 525년(을사년)에 안장되었다. 지석과 매지권(買地券)에 새겨진 날짜의 월삭(月朔)과 간지(干支)를 계산해 보면, 이는 남조 송이 445년에 반포한 원가력의 계산법과 정확히 일치한다. 백제가 늦어도 6세기 초에는 중국의 최신 역법을 자국의 국가 행정과 왕실 장례에까지 적용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정교한 지식 체계, 즉 의박사·역박사를 임명해 교대로 파견했다는 제도의 구체적인 기록은 정작 《삼국사기》에는 남아 있지 않다. 553년의 의박사 파견, 554년의 역박사 파견, 602년 관륵의 도일은 모두 일본 측 사서인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전한다. 백제 스스로 남긴 공식 기록이 전쟁과 멸망 과정에서 대부분 소실된 탓에, 백제의 과학기술사는 오히려 그것을 받아들인 이웃 나라의 기록을 거쳐야 재구성할 수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의학 분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확인된다. 백제에는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이라는 독자적인 의서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984년 일본에서 단바노 야스요리가 편찬한 《의심방(醫心方)》에 그 처방 일부가 인용되어 있어, 백제 의학이 실재했고 그 수준이 후대까지 참조될 만큼 정교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백제가 멸망한 660년 이후에도 그 지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멸망 11년 뒤인 671년, 백제 유민 출신 의료인 여럿이 일본으로 건너가 관직에 등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다시 그로부터 4년이 지난 67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 유민들이 ‘점성대(占星臺)’라는 천문 관측 시설을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이 관측대는 백제 본토가 아니라 멸망 이후 일본 땅에 세워진 것이지만, 백제인들이 지녔던 천문 지식과 인력이 나라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살아 움직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시대
6세기 초~7세기 초 (성왕~무왕)
핵심 인물
의박사 왕유릉타, 승려 관륵
핵심 제도
역박사·의박사·채약사 교대 파견
영향
일본 원가력 채택(604), 고대 일본 의학의 뿌리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일본서기》의 박사 파견 기록은 무령왕릉 지석의 원가력 부합이라는 물증으로 뒷받침되므로 신빙성이 높다. 백제는 국가가 운영하는 독자적인 천문·의학 관청을 갖추고 있었다.
신중론
《일본서기》는 8세기에 편찬되며 도래인 후손 세력의 위상을 높이려 윤색된 부분이 있을 수 있어, 파견 인원·시점을 문자 그대로 확정하기보다는 큰 흐름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신중한 시각도 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1500년 전 백제가 국가 자격증을 걸고 전문가를 길러 이웃 나라에 지식을 수출했던 방식은, 오늘날 한국이 백신과 진단키트, 의료 시스템 자체를 해외에 수출하는 ‘K-의료’ 모델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코로나19 시기 한국의 진단 체계가 세계 각국에 전수되고, 한국 의료진과 병원 운영 노하우가 중동과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는 지금의 모습은, 의박사가 처방을 들고 바다를 건넜던 6세기의 풍경과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다.
동시에 이 역사는 뼈아픈 교훈도 남긴다. 정작 백제 자신은 이 성취를 스스로 충분히 기록해 남기지 못했고, 그 결과 후대는 이웃 나라의 사서를 통해서만 자신의 과학사를 되찾아야 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룬 기술과 성과를 스스로 얼마나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는 지점이다.
| 구분 | 백제 시대 | 현재 |
|---|---|---|
| 전문 인력 제도 | 역박사·의박사·채약사를 국가가 임명, 교대 파견 | 국가 공인 전문의·연구원 파견, 의료 ODA |
| 지식 수출 | 원가력·의술을 왜국에 전수(553~604년경) | K-바이오, 백신·진단키트 해외 수출 |
| 기록의 아쉬움 | 자국 사서에 기록 부재, 일본 사서로만 확인 | 성과에 비해 부족한 국내 아카이빙 관행 |
[이미지: 백제의 지식 수출 항로와 오늘날 K-의료 수출 항로의 상징적 연결]
📚 더 깊이 알아보기
-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지석·매지권 — 원가력 부합의 실물 증거를 직접 볼 수 있다
- 일본 나라 지역에 남은 아스카 시대 사찰·유물에서 백제 도래인 학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 《의심방》(984년, 단바노 야스요리)에 인용된 《백제신집방》 처방 관련 연구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나라는 사라져도 지식은 사라지지 않는다. 백제가 남긴 별자리 계산과 처방전은 국경을 넘어 살아남았고, 오늘 우리가 세계에 내놓는 기술과 의료도 그렇게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하늘을 읽던 그 손과 사람을 살리던 그 손, 그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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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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