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화 작가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옻칠과 자개로 풀어낸 《시간의 향기 IX (괴석죽도)》를 제12회 대갈화사 회원전에 출품한다. 전시는 2026년 10월 7일부터 12일까지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열리며, 개막 행사는 7일 오후 5시에 진행된다. 박 작가는 이번 회원전에 이 작품 한 점을 선보인다고 밝혔다.
![]() [코리안투데이] 정신과 의사에서 민화·옻칠 작업으로…어린 시절의 기억을 《시간의 향기 IX》에 담다 © 김현수 기자 |
정신과 의사인 박경화 작가는 취미로 민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비단 위에 석채를 올리는 진채화와 옻칠 작업으로 표현의 영역을 넓혀왔다. 그 바탕에는 어린 시절 한옥에서 살던 기억과 오래된 도자기, 소반, 어머니와 함께 다녔던 박물관의 추억이 자리한다.
《시간의 향기》 연작은 이러한 기억에 연결된 감정에서 출발했다. 박 작가는 과거의 시간에 붙어 있는 감정을 후각적 감각인 향기로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목의 향기는 실제 냄새를 뜻하기보다 기억에 남아 있는 감정을 작품으로 옮기는 표현이다. 익숙했던 사물과 공간이 재료와 형태를 통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셈이다.
이번 작품은 나무와 삼베, 옻칠, 자개를 활용한 120×80cm 규모다. 전통 도자기 형태의 나무판에 괴석과 대나무를 배치했다. 청화백자를 특히 좋아한다는 박경화 작가는 두 소재의 상징을 푸른 옻칠로 조화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 [코리안투데이] 푸른 옻칠과 자개로 표현한 괴석과 대나무…강인함과 유연함을 함께 그리다 ©김현수 기자 |
괴석은 지조와 장수를, 대나무는 절개와 겸허함을 상징한다. 박 작가는 이러한 전통적 의미를 유지하면서도 화면 속 두 소재의 역할을 새롭게 구성했다. 대나무가 중심이 되고 괴석이 일부로 놓이는 표현에서 벗어나, 이번 작품에서는 괴석을 주인공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이를 위해 옻칠과 흙을 섞어 질감을 만들고 자개로 괴석의 존재감을 강조했다. 반면 대나무는 가늘고 휘어진 가지와 작은 잎으로 표현했다. 묵직한 괴석과 유연한 대나무가 대비를 이루면서 음양과 강유의 조화라는 작품의 의미를 전한다.
도자기 형태의 나무판 역시 작품의 중요한 요소다. 박 작가는 평면보다 부조 형식이 도자기의 양감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배경에는 삼베의 질감을 살리고, 도자기 형태의 판에는 여러 차례 작업을 거쳐 매끈한 표면을 구현했다. 거친 바탕과 부드러운 표면의 차이가 재료를 살펴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 [코리안투데이] 한옥과 도자기, 어머니와 찾던 박물관…오래된 추억에서 시작된 《시간의 향기》 © 김현수 기자 |
박경화 작가는 전통 공예의 재료와 기술을 바탕으로 작업하면서도 회화적인 표현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통 공예 전승자들의 숙련된 기술을 존중하되, 자신의 작업에서는 재료를 더욱 자유롭게 다루고 싶다는 뜻이다. 도상의 의미뿐 아니라 표면의 질감과 색, 형태의 관계를 통해 작품을 구성한다.
완성된 화면 뒤에는 여러 겹을 쌓고 다듬는 제작 과정이 있다. 박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작업 중 옻칠 한 겹이 칠장에서 마르는 데 약 8시간이 걸린다. 이후 며칠 동안 굳힌 뒤 사포로 표면을 고르게 다듬는다. 이러한 과정을 세 차례 정도 반복하고, 아교로 자개를 붙인 뒤에도 칠하고 다듬는 작업을 세 차례 이상 이어간다.
작업 초기에는 옻 알레르기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작품에서 보이는 색과 질감은 한 번의 칠로 만들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건조와 기다림, 반복적인 표면 정리를 거쳐 여러 층이 쌓이며 완성된다. 《시간의 향기 IX》라는 제목은 이러한 제작 과정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 ▲ [코리안투데이] 삼베의 질감과 도자기 형태의 부조가 만나다…천연재료로 넓힌 회화적 표현 ©김현수 기자 |
박 작가가 민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선함과 유머, 의외성이다. 정교한 묘사만으로 평가하기보다 다소 서툰 표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민화의 매력에 주목한다. 전통적 상징을 새로운 재료와 구성으로 풀어내려는 시도 역시 이러한 작업관과 연결된다.
현대민화공모전 본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대갈화사 활동은 작업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전업 작가가 아닌 박 작가에게 회원들과의 만남은 정보를 나누고 조언을 얻는 기회다. 같은 관심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며 공감과 창작의 자극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에게는 정해진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각자의 시선으로 작품을 살펴보기를 바랐다. 박경화 작가는 “관객은 마음대로 보시고 궁금함으로 조금 머물러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도자기 형태와 괴석, 대나무를 먼저 바라본 뒤 표면의 세부 표현에도 시선을 두어보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 [코리안투데이] 제12회 대갈화사 회원전에 《시간의 향기 IX》 출품…겹겹이 쌓은 옻칠로 기억을 표현하다 © 김현수 기자 |
앞으로는 《시간의 향기》 연작에서 질감의 표현을 더욱 다양하게 탐색할 계획이다. 금박과 은박, 동박 등의 활용도 구상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된 작업은 민화와 진채화, 옻칠을 거쳐 새로운 재료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경화 작가의 《시간의 향기 IX (괴석죽도)》는 제12회 대갈화사 회원전에서 만날 수 있다. 전통 도상의 상징과 옻칠·자개의 표현, 기억에 연결된 감정이 한 화면 안에서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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