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경 작가, 《몽유》에 담은 무게 없는 걸음…민화에서 찾은 생명과 자신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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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홍은경 작가가 민화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생명감이었다. 1998년 호암미술관 전시에서 본, 바위에 앉은 새의 눈빛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동그랗게 열린 눈이 응시하는 공간에서 작가는 살아가기 위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 만남은 민화를 그리는 계기가 됐고, 자신의 뿌리와 회화의 방향을 돌아보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코리안투데이] 민화 속 새의 눈빛에서 발견한 생명감…자신의 뿌리를 찾아 이어 온 회화 작업  © 김현수 기자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에게 민화는 익숙한 표현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서양화의 재료와 사조를 배우고 작업하면서도 외부인 같은 느낌이 있었다고 작가는 설명했다. 민화를 만나면서 “본질적인 나”에 관한 물음에 조금씩 답할 수 있게 됐다.

작가를 이끈 또 다른 매력은 삶의 복을 바라는 마음이었다. 누구나 소원 성취를 바라며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다는 점에 마음이 움직였다. 민화를 그리는 행위는 형식에 대한 탐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바람을 담는 일이 됐다.

작품 《몽유》에서는 이러한 관심이 무게를 내려놓은 내면의 풍경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몽유도원도》에서 착안해 생각과 상황이 사라지고, 무게 없이 걷는 상태를 구상했다. 혼자가 되어 눈을 감는 순간 깃털처럼 가벼워진 채 걷다가 잠시 무언가를 응시하는 모습이다.

그 풍경은 처음부터 모든 형태를 정해 놓고 완성한 것이 아니다. 홍은경 작가는 초벌 작업에 남겨진 형태를 바탕으로 폭포와 길, 바위산을 그려 나갔다고 설명했다. 재료 위에 남은 흔적을 살펴보고, 그 흔적과 함께 화면을 만들어 갔다.

《몽유》에 사용한 재료는 합성섬유 융과 먹이다. 작가가 선택한 융은 민화를 그릴 때 그림 아래에 까는 모포다. 물기가 있는 얇은 한지가 작업 바닥에 달라붙지 않도록 받쳐 주던 천이 이번에는 그림을 담는 바탕이 됐다.

 [코리안투데이] 합성섬유 융에 먹으로 그린 《몽유》…예측할 수 없는 흔적에서 피어난 내면의 풍경  © 김현수 기자

이 재료는 먹의 움직임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이 있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융의 표면에는 짧고 촘촘한 털이 있으며, 밑면은 그물망 같은 구조를 이룬다. 마른 상태에서는 먹이 잘 묻지 않아 물을 분사해 적신 뒤 그려야 한다.

그러나 다음 날 마주하는 화면은 전날과 다를 수 있다. 먹이 천의 틈 사이로 스며들면서 그렸던 형태가 흐려지고 뭉개진 색이 남기도 한다. 작가는 다시 물을 적시고 먹을 올린 뒤, 먹이 천에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린다. 그 결과를 미리 알기 어렵다는 점이 작업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다.

이러한 제작 과정은 초벌에 남은 형태를 따라 풍경을 만들어 가는 방식과 맞물린다. 형태가 사라지거나 달라지는 표면을 다시 바라보며 길과 폭포, 바위산을 그려 넣는다. 작가의 의도와 재료의 변화가 함께 작품의 구도를 이루는 것이다.

작품 설명에 등장하는 “빛처럼 어둠을 쏟아내는 폭포”에도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다. 작가는 맑고 빛나는 작은 포말을 애간장을 끓여 만들어진 수증기에 비유했다. 겉으로는 가볍고 반짝이지만, 그 안에는 마음을 졸이는 과정과 그 과정이 끝나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다는 설명이다.

 [코리안투데이] 《몽유도원도》에서 착안한 무게 없는 걸음…폭포의 빛과 포말에 담은 간절함과 희망  © 김현수 기자

홍은경 작가가 《몽유》에서 표현한 가벼움은 이처럼 간절한 마음과 함께 놓인다. 무게 없이 걷는 상태와 애간장을 끓이는 감정이 같은 작품 안에 존재한다. 작가는 이를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하기보다 폭포의 빛과 움직임에 담아냈다.

새로운 재료를 다루면서도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민화의 기본 색과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민화의 색감과 형태가 지닌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바탕으로, 시각적 아름다움에 예술적 기능이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서양화 재료와 민화의 표현 기법을 접목해 온 작업도 이러한 방향에서 이어지고 있다.

홍은경 작가는 오는 10월 7일부터 12일까지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열리는 제12회 대갈화사 회원전에 참여한다. 다만 《몽유》는 세로 길이가 전시 규격에 맞지 않아 다른 작품으로 교체했다고 전했다. 개막 행사는 10월 7일 오후 5시에 열린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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