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진 작가의 작업은 어머니에게 위로가 되었던 꽃에서 시작됐다. 장애가 있는 막내동생을 돌보며 어머니가 겪었던 슬픔과 고통, 외로움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는 꽃을 보존하는 일에 기억과 추억을 함께 담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작업은 드라이플라워와 레진, 자개를 통해 상처를 받아들이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 [코리안투데이] 어머니를 위로하던 꽃을 오래 간직하다…드라이플라워와 레진에 담은 사랑과 그리움 © 김현수 기자 |
박수진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신 역시 가족의 아픔을 마주하며 삶의 깊이를 경험했고, 치유와 회복의 과정에서 감사함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머니가 꽃을 바라보며 얻었던 위로를 오래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작품의 출발점이었다.
그에게 꽃은 색과 형태를 지닌 재료이면서 누군가와 나눈 순간을 간직한 존재다. 꽃을 주거나 받았을 때의 감정, 바라보며 느끼는 아름다움과 생명의 신비를 실제 꽃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꽃을 한 달 이상 말리는 동안에는 재료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설렘도 생긴다.
건조한 꽃을 배치하고 레진을 부으면 색과 부피, 형태가 다시 달라진다. 작가는 그 변화에서 재료의 매력을 발견한다. 물감처럼 원하는 색을 곧바로 만들 수 없기에 꽃시장에서 재료를 구하거나 자연물을 채집하며 색을 찾는다. 건조가 제대로 되지 않은 꽃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코리안투데이] 《탄생과 환생》·《엄마·한》·《내면의 초상》으로 풀어낸 생명의 순환과 기억 © 김현수 기자 |
2026년 제작한 《탄생과 환생》은 이러한 재료의 변화를 삶의 순환과 연결한 작품이다. 지름 60㎝의 원형 안에 레진과 드라이플라워를 결합했다. 중심에서 피어난 꽃이 가장자리로 흩어지는 구성은 탄생과 성장,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원형은 끝과 시작이 이어지는 환생과 새로운 탄생을 표현한다.
《엄마·한》에서는 순환의 이야기가 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깊어진다. 작가는 자식들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희생을 떠올리며, 한스러울 수 있었던 삶을 사랑으로 승화한 모습에 주목했다. 함께했던 따뜻한 순간과 어머니가 떠난 뒤에도 남아 있는 그리움을 작품 안에 담았다.
달항아리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는 어머니의 품이자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꽃으로 채워진 부분은 함께 나눈 사랑과 따뜻한 기억을, 투명하게 남겨진 공간은 빈자리와 그리움을 나타낸다. 2026년 제작된 지름 60㎝의 이 작품에는 레진과 드라이플라워, 자개를 사용했다.
![]() [코리안투데이] 꽃으로 채운 사랑, 투명하게 남긴 빈자리…《엄마·한》에 담긴 어머니의 삶 © 김현수 기자 자개는 실제 조각을 레진과 함께 층층이 배치한다. 작가는 빛의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 보이도록 조각의 크기와 방향, 밀도를 조절한다. 투명한 레진을 겹쳐 깊이와 반짝임을 더하면서, 관람객이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표면이 달라지도록 구성한다. 《내면의 초상》은 구체적인 표정 대신 옆모습 실루엣과 꽃으로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박수진 작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을 보여주고, 관람객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투영할 수 있도록 표정을 지웠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 역시 2026년 제작됐으며, 지름 60㎝의 화면에 레진과 드라이플라워를 사용했다. 제작 과정에는 반복되는 실패도 따른다. 레진이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한여름과 겨울에 작업이 실패하기도 했고, 자연물에서 발생하는 기포는 탈포기를 사용해도 다루기 어려웠다. 여러 종류의 레진을 시험하며 재료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은 레진 색을 버리려다가 화면을 한쪽으로 기울이고 다른 색을 반대편에 부었는데, 두 색이 어우러진 모습이 더 좋았다고 한다. 작가는 그 위에 꽃을 배치해 작품으로 완성했다. 계획한 표현과 재료가 만들어낸 우연을 함께 받아들인 사례다. 이러한 작업 경험은 회복에 대한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박수진 작가는 “제가 생각하는 회복은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안고도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작업을 이어가며 아픈 기억을 피하기보다 바라보고 받아들이게 됐고, 그 기억을 지금의 자신을 만든 삶의 일부로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제공된 프로필에 따르면 《탄생과 환생》은 Asia Design Prize 2026 Winner, 《엄마·한》은 K-Design Award 2026 Winner에 선정됐다. 작가는 두 수상이 작업의 방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자개와 레진의 표현을 확장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데 더욱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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