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21화: 백제와 고구려 – 형제에서 원수로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나라가 서로의 왕을 죽이고 도읍을 불태웠다. 그러고도 마지막에는 다시 손을 잡았다.
백제 사람들은 자신들의 시조 제사에서 고구려의 시조와 같은 이름, ‘동명(東明)’을 불렀다. 《삼국사기》는 백제의 시조 온조를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로 전하고, 백제 왕실이 스스로 부여에서 나왔다고 밝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언어도 풍속도 닮은 이웃이었다. 그런데 371년 백제군은 평양성 아래에서 고구려 왕을 화살로 쓰러뜨렸고, 475년에는 고구려군이 백제의 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가까웠기에 더 깊이 갈라선 관계였다.
같은 민족, 같은 뿌리라는 사실은 평화를 보장했을까, 아니면 오히려 경쟁을 더 뜨겁게 만들었을까. 남북이 마주한 오늘, 삼국 시대의 형제 전쟁은 결코 낡은 이야기가 아니다.
◆ 시대의 풍경
4세기 동아시아는 중국의 분열기였다. 북쪽에서는 여러 유목계 왕조가 일어나고 남쪽에서는 동진이 버텼다. 중국이 흔들리는 틈에 한반도 북부와 요동을 두고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서 힘을 키운 백제가 서로 부딪혔다. 두 나라는 서해 바닷길과 황해도·경기 일대의 교역로를 놓고 다퉜다. 백제는 북진하고 고구려는 남진하는, 피할 수 없는 충돌이었다.
371년 근초고왕은 패하(浿河) 강가에 복병을 두어 고구려군을 꺾은 뒤 3만 군사로 평양성을 공격했고, 고국원왕은 이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반격은 매서웠다. 396년 광개토왕은 수군까지 이끌고 한강을 건너 한성을 압박했고, 아신왕은 “영원히 노객이 되겠다”고 맹세하며 무릎을 꿇었다(광개토왕릉비). 이후 백제는 신라·가야·왜와 손을 잡으며 살길을 찾았다. 433년에는 신라와 화친해 나제동맹을 맺었고, 이 동맹이 고구려 남진의 방파제가 되었다. 결정적 타격은 475년에 왔다. 장수왕의 3만 군이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였으며, 왕자 문주는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겨 나라를 다시 세웠다.
“겨울 10월, 백제왕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해 왔다. 왕이 군사를 내어 막다가 날아온 화살에 맞아 이달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4~5세기는 남북조의 분열기였다. 고구려와 백제는 북위·남조 양쪽에 사신을 보내며 저울질했고, 개로왕은 472년 북위에 고구려 토벌을 청했으나 거절당했다. 589년 수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삼국은 함께 거대한 압력을 받게 된다.
🗿 유럽/중동
한성이 무너진 475년의 이듬해인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었다. 642년 백제와 고구려가 손을 잡던 무렵,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랍군에게 니하반드에서 결정적 패배를 당했다.
🌏 기타 지역
일본 열도에서는 야마토 정권이 성장하며 백제와 긴밀히 교류했다. 백제는 불교와 문물을 전하며 동맹을 유지했고, 660년 멸망 뒤에는 663년 백강 전투에서 부흥군을 도왔다.
[이미지: 고구려 남진과 백제·신라의 대응 개념도 (371~475년)]
⚔️ 그날의 현장
“475년 가을, 한강 북쪽 성벽 너머로 고구려 3만 군의 깃발이 끝없이 이어졌다. 성문 밖은 연기로 뒤덮였고, 성안에서는 궁궐 공사로 지친 백성들이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개로왕은 태자 문주를 불러 신라에 구원을 청하라 일렀다. 사료가 전하는 바로는 신라의 원군 1만이 길을 떠났으나 도착하기 전에 도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성을 빠져나가려던 왕은 붙잡혀 최후를 맞았다. 살아남은 문주는 남쪽으로, 또 남쪽으로 피난 행렬을 이끌었다.” (사료에 근거한 재구성)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한성 함락은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개로왕은 472년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 공격을 요청했으나 북위는 이를 거절했고, 그 사실이 고구려에 전해졌다. 고구려는 승려 도림을 첩자로 보내 바둑으로 왕의 마음을 얻게 했다. 도림은 궁궐과 성곽을 크게 짓게 부추겨 백제의 국력을 소모시켰다는 것이 사서의 설명이다. 이 이야기에는 후대의 윤색이 섞였을 수 있지만, 475년의 참패 배경에 외교 실패와 내부 피로가 있었다는 큰 줄기는 학계도 대체로 받아들인다.
고고학도 두 나라의 뿌리가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서울 석촌동 고분군의 돌무지무덤(적석총)은 고구려 계통 무덤 양식과 닮았고, 이것이 백제 지배층의 기원을 고구려·부여계에서 찾는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반대로 서울 아차산 일대에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고구려가 쌓은 보루들이 남아 있다.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두 나라가 번갈아 주인이 된 흔적이다.
이후의 전개는 더욱 얄궂다. 551년 성왕은 신라와 연합해 한강 유역을 되찾았으나, 553년 신라가 하류를 기습해 차지하면서 나제동맹은 깨졌다. 성왕은 554년 관산성에서 전사했다. 그로부터 약 90년 뒤인 642년, 신라의 대야성을 무너뜨린 의자왕은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화친을 맺어 이른바 여제동맹을 만들었다. 한때 원수였던 나라가 공통의 적 신라, 그리고 그 뒤의 당나라를 향해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이 동맹은 서로의 이익을 맞바꾼 느슨한 협력에 그쳤고,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가 차례로 무너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시대
4세기 후반~7세기 중반
핵심 인물
근초고왕·광개토왕·장수왕·개로왕·의자왕
핵심 사건
평양성 전투(371), 한성 함락(475), 여제동맹(642)
영향
웅진 천도, 삼국 균형의 변동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백제 지배층은 부여·고구려 계통 유이민이 토착 세력과 결합해 성장했으며, 두 나라는 뿌리가 같음에도 한강 유역과 교역로를 놓고 구조적으로 충돌했다고 본다.
대안적 견해
온조 신화의 ‘주몽 아들’ 계보는 후대 정치적 정리이고, 실제 시조는 부여계 우태·구태 계통이라는 설이 있다. 여제동맹도 실제 군사 공조가 크지 않았다는 평가가 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는 ‘같은 민족이니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는 낭만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보여준다. 동질감은 출발점일 뿐, 안보와 이익이 어긋나면 가장 가까운 상대가 가장 치열한 경쟁자가 된다. 반대로 원수였던 나라도 공동의 위기 앞에서는 손을 잡았다. 관계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와 이익, 그리고 신뢰의 문제라는 것을 삼국의 400년이 말해 준다.
한반도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2007년·2018년의 정상회담을 거치며 화해와 긴장을 반복해 왔다. 여제동맹이 ‘상대의 안보를 이용하는 거래’였다면, 오늘의 대화는 서로의 불안을 줄이는 신뢰 구축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그리고 동맹이 파기된 553년의 교훈, 즉 약속을 어긴 대가는 결국 모두가 치른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 구분 | 백제 시대 | 현재 |
|---|---|---|
| 정치/안보 | 한강 유역과 교역로를 둘러싼 패권 경쟁, 왕의 전사와 도읍 함락 | 휴전선을 사이에 둔 군사적 대치, 주변 강대국의 이해관계 |
| 군사/외교 | 나제동맹·여제동맹, 북위·당에 대한 외교 줄타기 | 정상회담, 군사합의, 다자 외교 |
| 문화/정신 | 동명 시조 제사 등 공유한 기원 의식 | 같은 언어·역사·명절로 이어진 공통 유산 |
[이미지: 삼국의 적대와 동맹, 그리고 오늘의 남북 관계]
📚 더 깊이 알아보기
- 서울 석촌동 고분군의 돌무지무덤은 백제 초기 지배층과 고구려 문화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 서울 아차산 보루군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차지했던 시기의 군사시설이다.
- 광개토왕릉비 비문과 《삼국사기》 백제본기·고구려본기를 함께 읽으면 한 사건을 두 나라의 시선으로 비교할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형제였던 두 나라가 서로를 무너뜨린 역사는, 같은 뿌리가 평화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정한 사실을 일깨운다. 그러나 원수였던 이들이 손을 잡은 순간에도 보여주듯, 관계는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
“한강은 두 나라의 피를 기억하지만, 다시 이어질 다리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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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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