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백제 편] 제27화: 백제 문화재의 재발견 – 공주와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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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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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27화: 백제 문화재의 재발견 – 공주와 부여

1971년 여름, 장마철 배수로를 파던 인부의 삽날 끝에서 1,40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백제의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660년 사비성이 함락된 뒤 백제는 사서 속에서도 소략하게만 남았다. 《삼국사기》는 승자인 신라 계통의 기록을 바탕으로 편찬되었고, 백제 자체가 남긴 기록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그런 백제가 오늘날 우리 앞에 선명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은 땅속에서 하나씩 되살려낸 유물과 유적 덕분이다.

누가, 언제, 어떤 눈으로 공주와 부여의 땅을 파헤쳤을까. 일제강점기의 도굴과 조사, 해방 후의 본격 연구, 축제와 관광, 그리고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까지, 백제 문화재의 ‘재발견’ 100년을 따라가 본다.

◆ 시대의 풍경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공격으로 한성을 잃고 웅진(지금의 공주)으로 도읍을 옮겼고, 538년 사비(지금의 부여)로 다시 천도했다. 공주와 부여는 곧 백제 후기 약 180년의 수도였고, 이 두 도시의 땅속에 왕릉과 궁성, 절터가 겹겹이 묻혔다. 660년 사비가 함락되면서 이 도시들은 폐허가 되었다.

이 유적을 근대의 시선으로 처음 ‘조사’한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공주 송산리고분군은 1927년부터 1933년 사이 가루베 지온(輕部慈恩)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의 손을 거쳤다. 가루베는 교사 신분으로 수많은 고분을 파헤쳤고, 총독부박물관 유물카드조차 그의 행위를 ‘사굴(私掘)’, 즉 무단 발굴로 적었다. 조사 기록이 남았다는 점은 학술적 자산이지만, 그 과정에서 유물이 흩어지고 맥락이 파괴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상처다. 1933년에는 총독부박물관이 6호분을 정식 조사했다.

“무령왕은 신장이 8척이고 눈매가 그림과 같았으며, 성품이 인자하고 너그러워 민심이 따랐다.”

– 출처: 《삼국사기》 권제26 백제본기 제4 무령왕 즉위 기사 (취지 요약)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무령왕(재위 501~523) 시기 중국은 남북조 시대였다. 백제는 남조 양(梁)과 활발히 교류했고, 무령왕릉의 벽돌무덤 양식에는 그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 유럽/중동

538년 사비 천도 무렵 비잔틴 제국에서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7년 하기아 소피아를 완공했다.

🌏 기타 지역

일본열도의 야마토 정권은 백제로부터 불교와 기술을 받아들였다. 무령왕릉 관재로 쓰인 금송은 일본 남부에서 자라는 수종이어서 교류의 증거로 거론된다.

백제 문화재 재발견의 연표 1927~33 송산리고분 조사·도굴 1955 부여 백제대제 시작 1971 무령왕릉 발견 1993 금동대향로 출토 2015 세계유산 등재 약 90년, 잊힌 왕국이 다시 이름을 되찾기까지

[이미지: 백제 문화재 재발견 연표 (1927~2015)]

⚔️ 그날의 현장

“1971년 7월, 공주 송산리. 6호분 안으로 스며드는 물을 빼려고 인부들이 배수로를 파 내려가던 중, 삽 끝에 단단한 벽돌 벽이 닿는다. 이끼 낀 흙을 걷어내자 정연하게 쌓인 아치형 벽돌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봉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돌짐승이 먼저 눈을 맞춘다. 바닥에는 왕과 왕비의 이름을 새긴 지석이 놓여 있었다. 1,400여 년 만에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글자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발굴은 서둘러 진행되었고, 그 아쉬움은 지금까지도 학계에 남아 있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무령왕릉은 1971년 송산리고분군 6호분의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은 108종 4,600여 점에 이르고 그중 12점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무엇보다 지석 덕분에 무덤 주인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고대 왕릉이라는 점이 결정적이다. 지석은 사마왕(斯麻王), 곧 무령왕이 523년에 세상을 떠났다고 적어 《삼국사기》의 기록을 금석문으로 확인해 주었다.

1993년 12월 12일에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다. 높이 61.8cm, 무게 약 11.85kg의 이 향로(국보 제287호)는 6세기 후반 위덕왕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용이 받친 연꽃 몸체 위로 산과 신선, 악사와 동물이 빼곡하다. 불교와 도교적 세계관이 한 점에 응축된, 백제 공예의 정점이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한편 사회는 유산을 ‘기억’하는 방식도 만들어 갔다. 1955년 4월 부여에서 성충·흥수·계백 세 충신을 기리고 낙화암의 넋을 위로하는 ‘백제대제’가 열렸다. 1965년 제11회부터 ‘백제문화제’로 이름이 바뀌었고, 1966년 제12회부터 공주와 부여에서 함께 열리다가 1979년부터 격년 개최를 거쳐 2007년부터는 두 도시 통합 개최로 이어졌다. 망국의 한을 달래는 제의가 문화 관광 축제로 변해 온 과정이다.

이 모든 흐름은 2015년 7월 4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며 결실을 맺었다. 공주의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 부여의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능산리 고분군·정림사지·부여 나성, 익산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까지 모두 8곳이다. 위원회는 이 유산이 고대 한국·중국·일본 사이의 교류와 건축기술의 발전, 불교의 확산을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시대

웅진·사비기(475~660), 재발견은 1927~2015

핵심 인물

무령왕, 위덕왕

핵심 사건

무령왕릉 발견(1971), 금동대향로 출토(1993)

영향

세계유산 등재(2015)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일제강점기 조사는 기초 자료를 남겼으나 무단 발굴과 식민주의적 해석이 섞여 있어 비판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해방 후 연구는 이를 바로잡으며 백제사를 독자적 체계로 세워 왔다.

대안적 견해

무령왕릉의 급박한 발굴은 보존·기록 면에서 한계였다는 반성이 지금도 이어진다. 또한 개발과 관광 중심의 활용이 유산의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문화유산은 발굴되는 순간 끝나지 않는다. 무령왕릉 발견 당시의 혼란은 ‘어떻게 파느냐’가 ‘무엇을 파느냐’만큼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지금은 무덤 안을 직접 열기보다 첨단 기술로 비파괴 조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주와 부여는 이제 세계유산도시다. 백제문화제와 박물관, 유적 탐방은 지역의 정체성과 경제를 함께 키우지만, 방문객이 늘수록 보존의 부담도 커진다. 유산을 지키는 일과 나누는 일의 균형이 우리 세대의 숙제다.

구분 백제 시대 현재
유산의 의미 왕과 귀족의 무덤·절·궁성, 곧 국가의 권위 인류 공동의 세계유산
교류/외교 남조 양·왜와의 기술·불교 교류 한·중·일 공동연구와 국제 전시
문화/정신 불교·도교가 어우러진 세련된 미감 백제문화제, 문화관광, K-컬처의 뿌리 찾기

백제역사유적지구 – 세 도시, 여덟 곳 공주 공산성 · 송산리고분군 부여 관북리·부소산성 · 능산리 정림사지 · 나성 익산 왕궁리 · 미륵사지 2015년 7월 4일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등재 ※ 모식도이며 실제 거리·축척과 다름

[이미지: 백제 정신과 현대 한국 – 세계유산으로 이어진 세 도시]

📚 더 깊이 알아보기

  • 무령왕릉과 왕릉원(공주 송산리): 현재 모형관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으며, 무덤 속 외벽까지 첨단 기술로 조사한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 능산리 절터 출토 금동대향로는 부여에서 발견되었다. 같은 절터에서 나온 창왕명 석조사리감도 백제 불교 연구의 핵심 자료다.
  • 국립공주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 상설전시, 그리고 매년 가을 열리는 백제문화제에서 직접 만나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백제는 사라졌지만 땅은 기억하고 있었다. 우연히 열린 배수로 하나, 주차장 공사터의 진흙 한 줌이 한 왕국의 얼굴을 되돌려 주었다. 유산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일이다.

“땅속에서 깨어난 백제의 숨결은 지금도 공주와 부여의 하늘 아래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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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백제 유민의 이동 –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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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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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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