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오늘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1926년 10월 11일 월요일.
오전 10시 10분, 경성 종로 단성사 앞에는 벌써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을 것이다.
열흘 전인 10월 1일, 단성사 무대에 한 편의 영화가 올랐다. 나운규가 쓰고, 연출하고, 직접 주인공을 맡은 무성영화 <아리랑>이다. 오늘은 그 개봉 열흘째 되는 날이다. 이날 하루를 정확히 짚어 줄 신문 지면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확인된 사실만 엮어, 이 영화와 그 둘레의 풍경을 따라가 본다. 이날의 날씨 기록도 찾지 못했다. 시월 중순 가을이라는 계절만 말해 둔다.

📰 그날의 경성
🎬 단성사의 <아리랑>
영화는 3·1운동 때 붙잡혀 고문을 겪고 정신이 흐려진 청년 영진의 이야기다. 고향에 돌아온 영진은 여동생 영희를 지키려다 일본 경찰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오기호를 낫으로 찌른다. 그 순간 맑은 정신이 돌아오지만, 영진은 일본 경찰에 끌려간다. 마을 사람들은 아리랑 고개까지 따라 나와 노래를 부른다. 영희 역은 신일선이 맡았다. 상영이 끝나면 관객들이 울면서 아리랑을 따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한국 영화사 첫 대흥행으로 꼽히며, 극장이 없는 산간 마을에까지 퍼졌다고 한다.
출처: 국가기록원·한국 영화사 관련 보도 종합 (당일자 신문 원문은 확인 안 됨)
🏛️ 같은 날 문을 연 새 청사
<아리랑>과 같은 10월 1일, 경복궁 안에는 조선총독부 새 청사의 낙성식이 열렸다.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들어선 이 석조 건물을 짓느라 흥례문과 회랑이 헐렸고 광화문은 동쪽으로 옮겨졌다. 공사비는 675만 1,982엔이 들었다고 전한다. 궁궐 한복판에 선 권력의 건물과 같은 날 개봉한 영화 한 편. 우연이지만 많은 이들이 곱씹는 장면이다.
출처: 국가기록원 주제별 총설 ‘조선총독부 청사’
👤 오늘의 인물 – 나운규
월요일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날이다. 나운규는 이 영화에서 시나리오, 감독, 주연을 모두 맡았다. 극장 주인 박승필이 조선 사람이었기에 일제에 맞서는 낌새가 있는 영화도 곧잘 걸렸다고 한다. 물가와 관보는 이날 자료를 찾지 못해 적지 않는다.

🗾 경성과 한반도
올해는 조선 사람에게 유난히 무거운 해였다. 4월 25일 순종이 세상을 떠났고, 6월 10일 장례 날에는 만세 소리가 터졌다. 5월 28일에는 송학선이 창덕궁 금호문 앞에서 사이토 총독을 노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이듬해 5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여름에는 제2차 조선공산당 검거가 이어져 6월에서 8월 사이 수십 명이 붙잡혔다.
• 학생운동: 동맹휴교가 1926년 55건으로 늘어, 1921년의 23건과 견주면 두 배를 훌쩍 넘었다.
• 문화: 영화가 서울 밖으로 번지며, 극장 없는 마을까지 순회 상영이 닿았다고 전한다.
• 이날 지방 소식과 해외 한인 신문 보도는 확인하지 못했다.

🌍 그날의 세계
🇨🇳 중국
하루 전인 10월 10일, 북벌군이 우창을 손에 넣었다. 신해혁명 15주년 되는 날이었다. 우한 세 도시 가운데 마지막이었고, 우페이푸는 북쪽으로 달아났다.
🇯🇵 일본
와카쓰키 내각이 이어지고 있었고, 병약한 다이쇼 천황 대신 황태자 히로히토가 섭정을 맡고 있었다. 천황은 두 달 반 뒤인 12월 25일 세상을 떠난다.
🇺🇸 미국
10월 10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양키스를 4승 3패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마지막 순간 베이브 루스가 2루 도루를 하다 잡혀 경기가 끝났다. 이튿날 시카고에서는 갱단 두목 하이미 와이스가 총에 맞아 숨졌다.
곧 일어날 일도 있다. 10월 19일 런던에서 대영제국 회의가 열려 자치령의 대등한 지위를 말하게 된다.

🏮 경성 24시
🌅 아침나절
종로 거리로 사람들이 나서고, 극장 앞에는 낮 상영을 기다리는 줄이 생겼을 법하다. 다만 이날 줄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기록이 없다.
☀️ 한낮
광화문 앞 새 청사에서는 관리들이 일을 시작한 지 열 달째였다. 1926년 1월에 이사해 업무를 열었다고 전한다.
🌙 밤
무성영화 곁에는 변사가 있었다. 자막 다음에 변사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관객은 그 말투에 울고 웃으며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랬다.

🔄 100년의 거울
| 구분 | 1926년 | 2026년 |
|---|---|---|
| 영화인 | 감독이 각본과 주연까지 도맡고, 변사가 목소리를 입혔다 | 감독·배우·음향·후반작업이 직업으로 나뉘어 있다 |
| 영화 보기 | 극장에 가야 했고, 산골은 순회 상영을 기다렸다 | 손안의 화면으로 어디서나 본다 |
| 남은 기록 | <아리랑>의 필름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노래 ‘아리랑’은 지금도 불린다 |
💡 역사의 교훈
필름은 사라졌지만 노래는 남았다. 말을 마음껏 할 수 없던 때, 사람들은 한 곡의 노래로 같은 마음을 확인했다. 기록이 빈 날에도 역사는 이렇게 남는다.

내일을 기다리며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1926년 10월 12일을 함께 걷겠습니다.
The Korean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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