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10분 – 시계가 미소 짓는 시간, 100년 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오프닝 – 10시 10분의 경성
1926년 10월 12일, 화요일입니다. 이날 신문 지면은 이 글을 쓰는 지금 직접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날씨와 물가는 적지 않습니다. 대신 이날을 둘러싼 확인된 일들을 따라가 봅니다. 열하루 전인 10월 1일, 경복궁 안에 지은 조선총독부 새 청사에서 낙성식이 열렸고, 같은 날 종로 단성사에서는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막을 올렸습니다. 같은 도시에서 한쪽은 권력의 집이 문을 열었고, 한쪽은 조선 사람들의 울음이 극장을 채웠습니다.
그날의 경성 – 화요일, 법과 극장 사이화요일은 법과 질서, 그리고 문화생활을 살펴보는 날입니다. 이날 하루의 재판 기록이나 단속 기사는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해 여름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6월 10일 순종의 장례일에 맞춰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8월 10일에는 강달영 등 43명이 붙잡혔습니다. 권오설 등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잡혀간 일도 기록에 남았습니다. 시월의 경성은 그 검거의 그늘 아래 있었습니다.
이 무렵 문화생활의 중심은 극장이었습니다. 〈아리랑〉은 10월 1일 단성사에서 개봉해 한국 영화사 첫 대흥행으로 꼽힙니다. 단성사는 조선 사람 박승필이 주인이었다고 전합니다. 이날 몇 명이 들었는지, 몇 시 회차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경성과 한반도총독부 새 청사는 1916년 6월 착공해 10여 년 만에 지어졌습니다. 공사비는 700만 원 남짓으로 전합니다. 광화문은 동쪽으로 옮겨졌고, 흥례문과 영제교는 헐렸습니다. 1926년 1월 4일에 업무를 시작했고, 10월 1일에야 성대한 낙성식을 했습니다. 경복궁 앞길을 지나는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기록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리랑〉이 같은 날 개봉해 종로 거리가 눈물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날의 세계중국에서는 국민혁명군의 북벌이 한창이었습니다. 10월 10일, 신해혁명 15주년에 우한 세 도시 가운데 마지막 우창이 떨어졌다고 전합니다. 이 날짜는 한 곳의 자료에서만 확인되어 조심스럽게 적습니다. 미국에서는 10월 12일 뉴햄프셔 록킹엄 파크에서 자동차 경주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극장가에서는 〈족장의 아들〉이 인기였다고 하나, 이는 어림잡은 자료입니다.
경성 24시아침나절 종로로 나가면 전차가 오가고 신문을 펼친 사람들이 보였을 것입니다. 다만 이날 거리의 구체적인 모습은 확인된 기록이 없어 여기까지만 적습니다. 확실한 것은 극장과 거리, 두 곳 모두 조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다는 점입니다.
100년의 거울항목
1926년
2026년법제도치안유지법(1925)으로 결사·운동을 단속헌법이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문화생활무성영화, 변사의 해설, 단성사스트리밍과 극장 동시 개봉
〈아리랑〉
1926년 10월 1일 개봉
2026년 10월 1일 개봉 100주년총독부 청사는 1990년대에 철거되었고, 광화문은 제자리를 되찾았습니다. 〈아리랑〉은 지금도 우리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내일을 기다리며내일은 10월 13일 수요일, 교육과 청년의 날입니다. 내일 아침 10시 10분, 다시 만나요.
※ 이 글은 1926년 10월 12일자 신문 원문을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쓴 글입니다. 출처: 국가기록원 주제별 총설(총독부 청사), 〈아리랑〉 개봉 관련 보도, 경성지방법원 검사국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