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백제 편] 제29화: 백제의 정신 – 개방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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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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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백제 편

제29화: 백제의 정신 – 개방과 창조

문을 닫은 나라는 지켜낼 수는 있어도 새로 빚어내지는 못한다. 백제는 문을 열어 두었고, 그래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냈다.

오늘 우리는 전 세계가 한국의 음악과 드라마, 음식을 즐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를 갑작스러운 현상으로 말하지만, 바깥 문화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빚고 다시 이웃에게 건네는 일은 1,500년 전 금강 유역에서 이미 한 번 크게 벌어졌다. 660년 사비성이 무너지면서 왕국은 사라졌지만, 이들이 만든 향로와 탑, 무덤의 벽돌, 바다 건너로 전한 기술은 흔적으로 남았다.

백제는 무엇으로 700년 가까이 이어졌고, 무엇을 남겼을까. 강력한 군대가 아니라 ‘열린 태도와 세련된 손끝’이라는 답에서 이번 마지막 본편을 시작한다.

◆ 시대의 풍경

백제는 고구려와 맞서며 한강 유역에서 일어나 웅진(공주),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긴 나라다. 육지로는 늘 북쪽의 압박을 받았지만, 서해 건너 중국 남조와 바다 건너 왜로 이어지는 뱃길은 오히려 백제의 강점이었다. 지리가 개방을 낳은 셈이다.

《삼국사기》에는 근초고왕 30년(375년)에 박사 고흥이 처음 글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대목이 있고, 《일본서기》에는 6세기 초 백제가 오경박사를 일본에 보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성왕은 538년 도읍을 사비로 옮기며 나라의 모습을 새로 짰다. 무령왕릉 지석이 보여 주듯 6세기 초 무령왕 때에는 중국 남조 양나라와 활발히 교류했다. 이렇게 들어온 문화는 그대로 쌓이지 않고 백제의 손을 거쳐 새로운 형태로 바뀌었다.

“궁실을 지었는데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 (儉而不陋 華而不侈)”

– 출처: 《삼국사기》 백제본기 제1, 온조왕 15년 조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남북조의 분열기를 지나 수(581~618)가 통일했고 곧 당(618~)이 이었다. 남조의 귀족 문화와 불교 미술은 백제가 가장 즐겨 받아들인 원천이었다.

🗿 유럽/중동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재위 527~565)는 537년 하기아 소피아를 봉헌했다. 제국의 힘을 거대한 돔으로 과시하던 시기, 백제는 정교함으로 자신을 드러냈다.

🌏 기타 지역

일본 열도는 아스카 시대로, 백제의 승려와 기술자가 불교와 건축, 서적 문화를 전하며 새 국가 틀을 갖추던 때였다.

백제, 동아시아 문화의 교차로 百濟 사비 · 웅진 중국 남조 불교 미술 · 벽돌무덤 · 문자 일본 열도 사찰 · 기술자 · 오경박사 북방·서역 향로 양식 · 장식 요소 가야·신라 이웃과의 경쟁과 교류 받아들이고(수용) → 녹여내고(융합) → 다시 건넨다(전파)

[이미지: 백제를 중심으로 한 문화 수용·융합·전파의 흐름 개념도]

⚔️ 그날의 현장

“1993년 12월 12일, 부여 능산리 절터. 공방 터로 짐작되는 자리의 물웅덩이 바닥, 진흙 속에서 발굴단의 손끝에 금빛이 걸렸다. 흙을 조심스레 털어 내자 봉황이 날개를 펴고 선 뚜껑이 드러났다. 1,4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물건이 막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연꽃 봉오리 위로 산봉우리가 겹겹이 솟고, 그 사이로 악사와 동물, 신선이 숨어 있었다. 사비성이 불타던 660년 무렵, 누군가 이 향로를 서둘러 묻었으리라는 짐작이 학계에 오래 전해진다.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물건만은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첫째, 개방은 ‘받아들이는 능력’이었다. 1971년 발굴된 무령왕릉은 벽돌을 쌓아 아치형으로 만든 중국 남조 계열의 무덤이다. 그러나 그 안의 지석에는 왕을 ‘사마왕’이라 부르는 백제 고유의 표기가 쓰였고, 부장품에는 왕실의 금제 장신구가 가득했다. 무덤에서 나온 유물은 모두 2,906점에 이른다. 틀은 빌렸지만 내용은 백제의 것이었다.

둘째, 융합은 ‘새로 만드는 능력’이었다. 1993년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는 중국 한나라의 박산향로 전통을 잇되, 봉황과 연꽃, 다섯 악사와 다섯 악기, 수많은 산과 동물을 한 몸에 담아 도교적 이상향과 불교적 세계를 하나의 조형으로 엮어 냈다. 어느 나라에서도 같은 물건을 찾기 어렵다. 639년 봉안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구조를 돌로 옮긴 작품으로, 2009년 사리봉안기가 나오며 건립 시기가 확인되었다.

셋째, 전파는 ‘나누는 능력’이었다. 《일본서기》에는 513년과 516년 백제가 오경박사를 보냈다는 기사가 있고, 554년에는 악사 4명이 왜에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다. 불교의 일본 전래는 538년설과 552년설이 맞서지만, 백제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일본 아스카 시대의 사찰 건축에도 백제 기술자의 손길이 닿아 있다. 백제는 받은 문화를 쌓아 두지 않고 흐르게 했다. 사서가 전하는 시기와 인물은 서술에 따라 차이가 있어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지만, 이 흐름만은 여러 기록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시대

5세기 후반~7세기 중반 (웅진·사비기)

핵심 인물

무령왕, 성왕, 무왕

핵심 유물

금동대향로, 무령왕릉, 미륵사지 석탑

영향

동아시아 교류, 2015년 세계유산 등재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백제는 중국 남조와 북방, 서역의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해 독자적 양식으로 소화했고, 그 성과가 일본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유네스코도 한·중·일 삼국의 교류를 보여 주는 유산으로 평가했다.

대안적 견해

‘백제가 일본을 가르쳤다’는 일방향 구도는 단순하다는 비판이 있다. 미륵사 사리봉안기는 왕후를 사택씨 집안 사람으로 적어 《삼국유사》의 선화공주 이야기와 어긋나, 설화와 사실의 관계를 다시 따져 보게 했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한류가 세계로 퍼진 비결을 따져 보면 백제와 닮은 구석이 있다. K팝은 서양 팝과 힙합의 문법을 받아들이되 훈련 체계와 군무, 팬과의 소통 방식을 더해 새 장르로 만들었고, 한국 드라마도 외래의 장르 문법 위에 한국의 정서를 입혔다. 남의 것을 베끼는 데서 멈췄다면 ‘복제품’에 그쳤겠지만, 자기 것으로 재창조했기에 보편성을 얻었다.

다만 한류를 곧바로 백제의 후예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백제에서 배울 것은 계보가 아니라 태도다. 낯선 것에 문을 열 것, 받은 것을 자기 눈으로 다듬을 것, 그리고 만든 것을 이웃과 나눌 것. 이 세 가지는 21세기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 서려 할 때도 그대로 통한다.

구분 백제 시대 현재
수용 남조의 불교·벽돌무덤, 북방·서역의 양식 수용 서양 대중음악·영상 문법을 학습하고 수용
창조 금동대향로, 미륵사지 석탑 등 독창적 조형 K팝·K드라마 등 새로운 장르 결합
전파 오경박사·악사·기술자의 일본 파견 스트리밍·SNS를 통한 전 세계 동시 확산

파문처럼 퍼지는 문화의 힘 개방 · 창조 百 금동대향로 · 석탑 아스카 문화 · 사찰 세계유산 (2015) K-컬처 · 한류 정신의 계보가 아니라 태도의 공명

[이미지: 백제의 정신과 현대 한국 문화의 공명 개념도]

📚 더 깊이 알아보기

  • 2015년 7월 4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른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공주·부여·익산의 8개 유적(공산성, 송산리고분군, 관북리유적·부소산성, 능산리고분군, 정림사지, 나성, 왕궁리유적, 미륵사지)으로 이루어져 있다.
  • 1993년 능산리 절터에서 나온 금동대향로는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에서 12일 동안 약 7만 명이 관람했다고 전해진다.
  • 국립부여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국립익산박물관을 차례로 돌아보면 웅진에서 사비, 익산으로 이어진 백제의 시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백제는 땅을 넓힌 힘보다 문을 연 용기로 기억된다. 받아들이고, 다듬고, 나누는 이 순환이 곧 창조의 다른 이름이다.

“왕국은 사라져도 아름다움을 빚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백제의 정신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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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백제사 연구 – 일본서기와의 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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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백제 편 (총 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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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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