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와 새, 푸른 꽃을 자신만의 표식으로 삼아온 작가가 이름의 한자를 풀어낸 두 작품을 프랑스에 출품했다. 2026년 제작한 《사슴과 도깨비불》과 《도깨비불의 사슴》이다. 두 작품은 이름에 담긴 글자에서 출발해 공존과 영혼,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를 탐색한다.
임혜린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세 가지 소재는 시계와 새, 푸른 꽃이다. 작가에게 시계는 시간을 새기며 알리는 존재이고, 새는 영혼을 뜻하는 동물이다. 푸른 꽃은 신비로움을 담는다. 이 소재들은 작품 속에 직접적으로 등장하거나 간접적인 표현으로 스며들며 작업을 연결한다.
![]() [코리안투데이] 시계·새·푸른 꽃을 표식으로, 이름의 한자를 아크릴 작품에 풀어내다 ©김현수 기자 |
임혜린 작가는 “그림은 자유이다”라고 말한다. 세 가지 표식은 그 자유 속에서 자신의 그림을 이어가는 기준이다. 이번에 프랑스에 출품한 두 점에도 시계와 새, 푸른 꽃이 담겼다.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이루는 한자를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시도가 더해졌다.
《사슴과 도깨비불》은 이름에 들어가는 기린 린(麟)에서 영감을 얻었다. 작가는 환상의 동물을 뜻하는 글자를 보고 기린의 형상을 곧바로 그리는 대신, 글자를 구성하는 요소에 관심을 기울였다. 작가가 사슴과 도깨비불로 해석한 두 요소를 화면으로 꺼내온 작품이다.
작가의 설명에서 사슴은 불 속에서도 타지 않고 당당히 서 있는 존재다. 도깨비불은 사슴을 위협하는 대상으로 설정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함께 존재하고, 하나의 의미를 이루는 관계로 표현된다. 작가는 이를 두고 사슴이 도깨비불이고 도깨비불이 사슴인 듯한 느낌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해석은 불의 의미에도 이어진다. 작가는 도깨비불을 혼불이나 넋불과 연결해 바라본다. 불의 형태를 지녔지만 다른 존재를 해치지 않는 영혼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화면의 불은 파괴보다 존재와 공존을 생각하게 하는 소재로 사용된다. 《사슴과 도깨비불》은 10호 F 캔버스에 아크릴로 제작됐다.
두 번째 작품 《도깨비불의 사슴》에서는 이름 전체로 해석의 범위를 넓혔다. 수풀 림과 난초 혜에서 떠올린 숲과 꽃은 노을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 놓인다. 실제로 존재하지만 본래의 형체와 색을 분명하게 알아보기 어려운 시간이다.
![]() [코리안투데이] 《사슴과 도깨비불》·《도깨비불의 사슴》으로 공존과 보이지 않는 영혼 탐구 ©김현수 기자 |
임혜린 작가는 이러한 풍경을 통해 존재를 안다는 것과 그 모습을 정확히 본다는 것 사이의 차이를 살핀다. 어딘가에 숲이 있다는 사실을 알더라도 정확한 위치와 형태를 모두 알 수는 없다. 숲에 있을지 모르는 꽃 역시 관람자의 시야 밖에서 존재할 수 있다. 작품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그림자에 잠긴 풍경으로 풀어낸다.
반면 사슴과 도깨비불은 노을의 그림자에 잠기지 않는다. 작가의 설정에서 환상의 존재는 현실 세계의 법칙에 구애받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숲과 꽃은 어둠 속에서 형태를 잃어가지만, 상상 속 존재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현실과 환상의 위치가 뒤바뀌는 구성이다.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무엇이 보이는가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로 이어진다. 눈에 보이는 대상이 언제나 의미로 가득한 것은 아니며,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작가의 생각이 담겼다. 영혼은 이러한 질문을 풀어내는 중심 소재다.
임혜린 작가는 살아 있는 존재마다 서로 다른 혼이 있다고 믿는다. 그 모습이 인간이 상상하는 형태와 같은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도깨비불의 사슴으로 표현했다. 이는 영혼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설명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믿음과 상상력을 이미지로 옮긴 작업이다. 《도깨비불의 사슴》은 10호 P 캔버스에 아크릴로 완성됐다.
두 작품은 이름이라는 개인적인 출발점에서 서로 다른 존재의 공존과 시선의 한계를 다룬다. 시계와 새, 푸른 꽃이라는 일관된 표식 안에서 사슴과 도깨비불은 새로운 해석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작가가 말하는 그림의 자유는 익숙한 글자와 풍경을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바라보는 과정에 담겨 있다.
[ 김현수 기자: incheoneast@thekoreantoda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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