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 – 신라 편] 제20화: 성덕왕 시대 – 통일신라의 전성기, 35년의 평화가 남긴 것

Photo of author

By 코리안투데이 글로벌

역사는 살아있다 – 신라 편 제20화 삽화 (AI 생성 이미지 · 코리안투데이 · 실제 현장 사진 아님)
新

THE KOREAN TODAY

역사는 살아있다

신라 편

제20화: 성덕왕 시대 – 통일신라의 전성기

한 지도자가 35년을 재위했는데도 나라가 흔들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 시간을 ‘장기 집권’이라 부를까요, ‘안정’이라 부를까요?

702년 즉위해 737년까지 신라를 다스린 성덕왕(聖德王)의 치세는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통틀어 가장 길고 안정된 시기에 속합니다. 삼국통일 전쟁이 끝난 지 30여 년, 신문왕이 다져 놓은 전제왕권 위에서 신라는 안으로 백성의 생계를 챙기고 밖으로는 당과 발해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실리를 얻어 냈습니다. 훗날 ‘통일신라의 전성기’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태평성대는 저절로 온 것이었을까요? 성덕왕은 어떤 제도와 외교로 35년의 평화를 설계했고, 그의 이름을 단 거대한 종은 왜 아들과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울리게 되었을까요? 이번 회차에서 그 답을 따라가 봅니다.

◆ 시대의 풍경

8세기 초 동아시아는 새 질서로 재편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멸망(668년) 뒤 그 옛 땅에서 698년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고, 당나라에서는 712년 현종이 즉위해 이른바 ‘개원의 치’라 불리는 번영기를 열었습니다. 신라는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대동강 이남을 지켜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성덕왕은 이 환경 속에서 세 갈래 정책을 폈습니다. 첫째, 당에 수시로 사신을 보내 관계를 돈독히 했습니다. 둘째, 721년 북쪽 국경에 장성을 쌓고 722년 경주 동남쪽에 모벌군성(관문성)을 쌓는 등 방어를 다졌습니다. 셋째, 722년 8월 ‘정전(丁田)’을 지급해 농민 기반을 안정시켰습니다. 706년 흉년에는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했다는 기록도 있고, 718년에는 물시계를 관장하는 누각전(漏刻典)을 두어 시간 관리 체계도 정비했습니다.

“(성덕왕 21년) 가을 8월, 처음으로 백성에게 정전(丁田)을 지급하였다.”

– 출처: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8권 성덕왕 21년(722) 기사 (번역문)

◆ 같은 시대, 다른 세계

🏛️ 중국

당 현종(재위 712~756) 초기의 번영기. 균전제로 농민에게 토지를 나누던 제도가 신라 정전 지급의 참고가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 유럽/중동

비잔틴 제국은 레오 3세(717~741) 아래 717~718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전을 막아 냈고, 726년경 성상 파괴 논쟁이 시작되었다. 우마이야 칼리프국은 이베리아반도까지 진출했다.

🌏 기타 지역

일본은 710년 헤이조쿄(나라)로 도읍을 옮기고 율령 체제를 정비했다. 서유럽 프랑크 왕국에서는 732년 카롤루스 마르텔이 투르-푸아티에 전투를 치렀다.

성덕왕 시대의 동아시아 (8세기 전반)

당(唐)

발해

신라

금성(경주)

북쪽 장성(721) · 패강 이남(735 당이 인정)

사신·교역

※ 개략도이며 실제 경계와 다를 수 있음

[이미지: 당·발해·신라의 삼각 구도와 북방 방어선 (8세기 전반)]

⚔️ 그날의 현장

“733년 겨울, 북으로 향하는 신라 군사의 행렬 위로 눈보라가 몰아쳤다. 당 황제의 요청을 받들어 발해의 남쪽을 치러 가는 길이었다. 산길은 눈에 묻혀 사라졌고, 얼어붙은 갑옷 아래에서 병사들의 입김만이 하얗게 흩어졌다.”

“기록은 병력의 절반 이상을 잃고 돌아왔다고 짧게 전할 뿐이다. 그러나 이 퇴각은 훗날 당 황제가 패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 인정하는 외교의 밑거름이 되었다. (※ 위 장면은 사료에 근거해 재구성한 것이며, 세부 묘사는 상상이다.)”

◆ 역사의 진실을 찾아서

성덕왕 치세의 핵심은 ‘실리 외교’입니다. 발해는 732~733년 무렵 당의 등주를 공격했고, 당은 신라에 남쪽에서 발해를 치라고 요구했습니다. 신라는 군대를 보냈지만 큰 추위와 눈으로 성과 없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735년 당 현종은 사신 김의충이 귀국할 때 패강(대동강 일대로 보는 것이 통설) 이남 땅을 신라가 영유하도록 인정하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칼 한 번 제대로 뽑지 못하고도 영토를 공인받은 셈입니다. 이 시기 신라는 일본과의 긴장(731년 일본 병선의 침입 기록)도 함께 관리해야 했기에 발해와의 정면충돌을 피하려 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내치의 상징은 722년의 정전 지급입니다. 《삼국사기》는 이 사실을 한 줄로만 적었기에 실체를 두고 논의가 이어집니다. 다만 같은 시기 모벌군성 축조, 누각전 설치, 구휼 기록 등을 함께 보면, 성덕왕이 농민의 생계를 안정시켜 세금과 군역의 기반을 확보하려 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또 727년경 신라 승려 혜초가 인도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것도 이 시대의 개방성을 보여 줍니다.

성덕왕의 이름이 가장 크게 울리는 곳은 경주박물관의 종각입니다.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은 아들 경덕왕이 아버지의 공덕을 기려 발원했으나 완성하지 못했고, 손자 혜공왕 때인 771년에야 완성되었습니다. 높이 약 3.7m, 무게 약 19톤에 이르는 이 종은 성덕왕 시대의 번영이 후대에도 기억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시대

8세기 전반 (702~737)

핵심 인물

성덕왕, 당 현종, 발해 무왕

핵심 사건

정전 지급(722), 출병과 패강 이남 인정(733~735)

영향

안정된 재정 기반과 경덕왕 대 문화 융성

🔍 학계의 시각

주류 견해

정전은 당 균전제의 영향을 받아 농민에게 일정한 토지를 지급한 조치로, 국가가 농민 지배를 강화한 정책이라고 본다.

대안적 견해

토지를 새로 나눈 것이 아니라 농민이 이미 경작하던 토지를 국가가 공인한 것이라는 해석 등이 있으며, 사료가 한 줄뿐이라 실체는 확정하기 어렵다.

◆ 오늘 우리에게 묻다

성덕왕의 35년은 ‘오래 집권한 것’ 자체보다 ‘오래 집권하는 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묻게 합니다. 그는 흉년에 곡식을 풀고, 농민의 토지 기반을 다지고, 시간 관리 같은 공공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시간을 썼습니다. 오늘의 언어로는 사회 안전망과 재정 기반을 함께 다지는 일이었습니다.

외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오늘의 한국처럼, 신라는 당과 발해 사이에서 무리한 확전을 피하고 얻을 것을 얻었습니다. 다만 당시 ‘복지’는 근대적 의미의 복지국가가 아니라, 안정적인 수취를 위한 통치 수단이기도 했다는 점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구분 신라 시대 현재
정치/안보 35년 장기 재위, 전제왕권 안정 정치적 연속성과 견제 장치의 균형
군사/외교 당·발해 사이 실리 외교, 패강 이남 공인 강대국 사이 균형 외교, 다자 협력
문화/정신 성덕대왕신종, 혜초의 구법 여행 K-컬처와 문화유산의 세계화

성덕왕의 35년과 오늘의 연결

702 즉위
722 정전 지급
733 출병
735 패강 이남 인정
737 서거

▼ 오늘의 질문으로 이어지다 ▼

안정
장기 집권 vs
연속성

민생
토지·구휼 →
사회 안전망

외교
당·발해 사이 →
균형 외교

성덕대왕신종 (771) — 번영의 기억

[이미지: 성덕왕 치세의 연표와 현대 한국의 과제]

📚 더 깊이 알아보기

  •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종각의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 — 종의 명문과 비천상, 맥놀이 소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에밀레’ 설화는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로, 학계에서는 종 성분 분석에서 인골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8권(성덕왕·효성왕 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살아있는 역사의 목소리

성덕왕의 35년은 화려한 정복이 아니라, 흉년에 곡식을 풀고 농민의 땅을 지키며 강대국 사이에서 길을 찾은 꾸준한 선택의 시간이었습니다. 진짜 태평성대는 평화가 길어서가 아니라, 그 평화를 만드는 일상의 결정이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종소리는 멈추어도, 그 종을 빚은 시대의 마음은 오늘도 울린다.”

이전 편

제19화: 신문왕의 개혁 – 전제왕권 확립

다음 편

제21화: 경덕왕과 불국사 – 불교 예술의 꽃

코리안투데이 “역사는 살아있다” 시리즈
신라 편 (총 35편)

© 2025 The Korean Today. All rights reserved.
본 콘텐츠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작성되었으며, 다양한 학술적 견해를 균형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 기사 원문 보기

<저작권자 ⓒ 코리안투데이(The Korean 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WIA Code — 이 기사 링크
인쇄용 · WIA Code 스캐너로 비추면 인터넷 없이 발행 확인
기사 바로 열기 ·
⇓ PNG 다운로드

이 하트 코드, 나도 무료로 만들기

댓글 남기기

WIA Family · 88개 언어 무료 학습 게임 — WIAverse →